['기업지배구조' 개선/학계 전문가 6人 토론회]

  • 입력 1999년 9월 21일 19시 25분


재벌개혁의 핵심으로 떠오른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이 이달내 확정된다. 대주주의 전횡을 견제하고 ‘이사회 중시’경영을 정착시킨다는 점에서 재계와 정부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개선안의 각론과 법제화를 둘러싸고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이에 따라 재벌개혁이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되기 이전인 90년대 중반부터 기업지배구조를 연구해온 6명의 학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난상토론을 거친 뒤 학계 차원의 중립적인 기업지배구조 개선안을 마련했다. 재계와 정부가 가장 큰 논란을 벌이고 있는 ‘사외이사 50% 의무비율’에 대해 이들은 ‘이사회가 거시적인 감독 견제기능을 담당하도록 변화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과반수 확충’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사회의 역할이 이처럼 바뀔 경우 감사위원회의 기능은 업무중복을 피하기 위해 회계감사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정리했다. 토론에서는 모범규준안이 어떤 형태로 최종 확정되더라도 법제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규준안이 선진국 기업모델을 가감없이 수용해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일부 토론자의 지적을 수용해 ‘핵심사항에 대해서만 법제화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으로 수정됐다. 토론자들은 특히 미국 등 선진국이 사외이사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20년 이상이 소요됐음을 지적하면서 “대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자=이영기(한국개발연구원금융팀장) 남상구(고려대교수) 박상용(연세대교수) 정갑영(연세대교수) 최도성(서울대교수·주제발표) 정광선(중앙대교수·사회)]

▼규준案 법제화 필요한가▼

▽최도성〓기업지배구조 개선 논의는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느낌이 있다. 97년 말의 금융 외환위기도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실패에서 기인했다는 데 학계에서는 이론이 없다. 지배구조 개선이 정부 기업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개선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것을 법제화하면 기업자율에 어긋난다. 기업지배구조의 최후 평가자는 시장이어야 한다.

▽박상용〓핵심사안은 법제화가 필요하다. 단 문화적 충격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이를 흡수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 문제는 역사가 오랜 외국기업들처럼 순수하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기업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다. 바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소유자가 경영을 하는 환경이다.

실제로 대주주들이 상장기업을 비공개 사기업처럼 운영해왔다. 여전히 강력한 소유경영자와 그 일가들이 존재하고 금융기관의 감시 견제기능이 취약한 상황에서 법제화는 불가피하다.

▽남상구〓법제화를 해도 기업들이 피해가는 상황임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갑영〓규준안은 한국형 기업모델을 모색하는 것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권고안을 그대로 가져온 인상을 준다. 우리는 사외이사를 도입한 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이상적인 모델을 제시하되 과도기에는 법제화를 최소화해야 한다.

▼이해집단의 이사회 참여 여부▼

▽정광선〓주식회사에서는 주주가 가장 큰 위험을 부담한다. 잔여(殘餘)청구권을 갖기 때문에 의사결정권은 당연히 주주 몫이다. 채권자 근로자들은 각각 위험을 기피하거나 고용조정을 우려하기 때문에 기업가치 극대화란 목표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주주를 중심으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독일은 기업감독위원회에 근로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영미식 이사회보다 경영개입 정도가 낮다. 우리는 이미 영미식 기업모델을 채택한 이상 근로자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크다.

▽이영기〓상법상 이사는 주주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무시하는 경영은 곤란하다. 채권자의 이익을 해치면서 외부자금을 끌어 쓸 수 없고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경영하면 생산성이 떨어져 결과적으로 기업가치도 떨어진다. 주주들이 이사회를 대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특수한 상황(채권단의 출자전환)에서는 이사회에서 주주 자격으로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박상용〓주주들은 근로자 채권자들에 비해 교섭수단이 부족하다. 국내에서는 우리사주(社株)제가 활성화됐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사주조합에 가입해 사외이사를 추천할 수도 있다. 특히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사외이사 비율 얼마가 적당한가?▼

▽최도성〓재계는 사외이사들이 집행임원같은 전문성이 없어 이사회가 의사결정을 지연시킬 수 있고 위험회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반론을 편다. 그러나 이는 이사회를 집행기구로 인식하기 때문에 생긴 오류다. 이사회는 엄밀하게 감독기구이다.

미국 GE나 마이크로소프트 체이스은행 등의 경우 사외이사가 대부분이다. 다만 미국은 정부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사외이사 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해 사법부가 최대한 경영판단을 존중하도록 하는 등 유인책을 썼다.

다만 사외이사가 독립성이 없다면 과반수 의무화는 의미가 없다.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외이사가 중심이 된 ‘이사후보추천위’를 설치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박상용〓일상적 경영상 결정도 이사회가 하는 것으로 우리기업들이 착각하고 있다. 과반수가 문제가 아니다. 부작용을 줄이는 갖가지 보완장치를 마련한다는 전제하에서 지금 실시해야 한다. 나중에는 어렵다.

▽남상구〓‘50% 이상’ 같은 형식논리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재계에서 주장하듯 사외이사가 50%를 넘으면 기업경영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사외이사는 경영을 제대로 못하게 하기보다 부실계열사 편법지원 등에 간섭할 뿐이다. 경영은 최고경영자와 보좌진이 맡지만 사외이사는 경영에 참여하지 못하는 소수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의사결정을 견제해야 한다.

▽이영기〓이사회 역할과 기능이 재정립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은 사외이사가 공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잘못됐다.

과거 상법상 이사회는 지점장 선임까지 담당했다. 이같은 기능은 다 털어버리는 추세다. 누가 몇명 선임되느냐보다 어떻게 운영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미국처럼 기업부실을 예방하거나 사후 조치할 수 있는 인수합병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부통제 시스템이 훨씬 중요하다.

▽정갑영〓아직도 이사회 기능에 세부적인 것이 많다. 현실적으로 집행기능이 많다는 얘기다. 당장 과반수를 사외이사로 채우는 것은 문제다. 경영투명성만을 위한다면 필연적으로 경영효율성과 부닥칠 수밖에 없다.

먼저 이사회 기능을 분명히 하고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사외이사 확충을 공기업에서부터 적용하길 강력히 제안한다. 사외이사 도입으로 공기업 경영이 활성화된다면 정부가 시키지 않아도 민간의 사외이사 비율은 확대된다.

▼대주주가 사외이사 될 수 있나▼

▽남상구〓국내 굴지의 이동통신업체가 감사협의회를 도입할 때 대주주가 ‘자신도 비상임이사이니 감사협의회에 끼어야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대주주는 그룹 회장으로서 기업 경영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실제로 그룹 경영이 그사람 동의를 벗어나 이뤄지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경영하면서 감시하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주주 권리가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점에서 대주주도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규준이 제한하려는 대주주는 실질적으로 경영에 관여하는 사람이다. 이들이 사외 이사에 참여하는 것은 모순이다.

▽정광선〓소유 경영이 실질적으로 분리된 회사에서나 대주주가 사외이사 활동을 할 수 있다. 특히 거래관계에 있는 계열사 임원으로 활동한다면 더욱 문제다.

▽최도성〓대주주가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 사외이사 참여를 제한하지 않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도 검토할 만하다

▼감사위원회의 업무범위▼

▽최도성〓감사기구를 이사회와 별도로 두는 독일식 기업모델과 이사회 하부기구로 보는 영미식 모델사이에서 충돌이 생기고 있다. 현행 감사를 감사위가 흡수해 업무 중복을 피해야 한다.

과도기적으로 일본처럼 사외감사가 주축이 되는 감사회를 설치하고 감사위 전환은 장기적으로 추진8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박상용〓일단 감사위원회의 회계감사라도 확실히 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다. 업무감사는 감사위가 아닌 이사회내에서 이사진을 실적 평가하면 된다. 경영판단의 원칙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타당성을 따지기 어려운 만큼 실적이라도 제대로 평가하면 책임추궁 및 보상이 될 것이다.

▽남상구〓현재 감사에게 권한이 많지만 아무도 행사를 하지 않고 있다. 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