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지는 22일 한국의 재벌총수들이 기업을 자신의 봉토(封土)로 여기면서 전횡을 부리는 전근대적인 경영이 오늘날 한국 경제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최근 부도난 한라그룹이 20개월 전 최첨단 조선소를 준공할 때 하객들에게 나눠준 기념컵은 지금 돈을 구걸하는 거지깡통으로 바뀌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면서 이같은 무모한 투자는 전적으로 정인영(鄭仁泳)회장의 독단적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우리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고 회장의 생각들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는 이 그룹 전직 간부의 말을 인용, 무리한 투자를 해온 정회장의 행태가 한국에서는 그만의 독특한 문제는 아니라고 보도했다.
포스트는 또 쌍용그룹의 사주도 이미 공급포화상태인 자동차시장에 40억달러를 투자, 「회장님」(체어맨)이라는 차를 개발했지만 결국 대우에 공장을 넘겼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이어 삼성이 주력업종인 반도체분야의 경쟁이 격심함에도 불구하고 자동차공장에 수십억달러를 쏟아붓고 있으며 제과업체인 해태는 전자제품과 중공업으로 외도했다가, 속옷업체인 쌍방울은 정보통신과 리조트에 손댔다가 무너졌다고 예를 들었다.
이처럼 재벌총수 개인의 무모한 야망이나 취향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될 수밖에 없는 것은 회사의 주요 임원들이 대부분 총수의 피지명자거나 총수 자녀 또는 친인척이어서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또 이같은 가족 지배를 뒷받침하는 것은 총수 가족이 거미줄처럼 서로 얽힌 지분분배를 통해 계열사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 신문은 또 몇몇 사업들은 정치와 관련돼 있다면서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부산에 공장을 짓는 것을 조건으로 삼성에 자동차시장 진출을 허용한 것을 예로 들었다.이 신문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당선자는 재벌들의 운명도 시장경제의 원리에 맡기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러나 대규모 실직사태를 우려, 기업의 주인만 바꾸는 방향으로 생각을 굳히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홍은택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