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 다시 살리자]지도력 부재가 빚은 「국가부도」

  • 입력 1997년 11월 28일 20시 29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에 매달려 경제주권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은 경제위기의 결과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그러지 않고는 대외채무 상환불능이라는 국가부도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 경제위기의 실체다. IMF 뿐 아니라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세계은행(IBRD)에까지 다시 손을 벌리게 된 것은 국가부도 위기의 수위를 말해준다. 90년 ADB 지원대상국에서 졸업했고 95년 IBRD 차관에서 졸업했으나 졸업장을 반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그러고도 경제부총리가 일본에 손을 내밀러 갔다. 잔인한 재정 금융긴축이 불가피하다. 기업 금융기관 할 것없이 더이상 파산 정리의 성역은 없다. 경기는 더욱 얼어붙고 거리는 실업자로 넘칠 것으로 우려된다. 앞으로 수년간은 내일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어제와 오늘의 빚을 갚기 위해 살아야 한다. IMF 구제금융이 경제위기의 새로운 시작인 이유들이다. 그렇지않아도 하루도 기업부도 소식없이 저무는 날이 없다. 노동법의 정리해고 유예조항도 더이상 근로자들에게 위안이 되지않는다. 조직을 20%, 30%, 50% 줄이는 기업이 속출한다. 달러화를 갖고 있는 외국투자자들과 금융기관들은 한국을 더이상 안정적인 투자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들여왔던 돈을 떼일까봐 『어서 달라』고 야단들이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은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한꺼번에 두단계나 낮추면서 「한국에 투자할 때는 유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가 말라간다. 한국은행이 관리하는 외환보유고는 26일 현재 2백억달러 정도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장부상 재산일 뿐 지금 당장 달러로 쥐고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기업 부도때문에 은행이 받을 돈은 안 들어오고 외국에서 빌렸던 돈은 어김없이 만기가 돌아온다. 자금시장이 마비상태에 빠져 기업들은 연20% 안팎의 금리를 물고도 돈을 빌릴 수 없어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니 견딜 재간이 없다. 종합주가지수는 400선 붕괴까지 우려되는 10년만의 최저수준이다. 환율폭등과 불안한 통화운용 등으로 물가고가 예고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우리 경제위기의 현상들이다. 고려대 곽상경(郭相瓊)교수는 『우리 경제는 승선인원을 무시하고 무작정 사람을 태웠다가 침몰위기에 빠진 배와 같다』고 말했다. 왜 이렇게 됐나. 문민정부 출범이후 우리나라는 정말 겁없이 외국돈을 빌렸다.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무역수지적자가 늘어나자 너도나도 해외차입에 매달렸다. 더욱이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단기외채가 총외채의 55%에 달하는 무분별한 차입이었다. 그나마 빌려온 돈은 기업의 무모한 과잉투자, 국민들의 사치성 소비, 정부의 무분별한 국책사업 등에 쓰이고 말았다. 급전을 빌려다가 타당성 검증도 하지않은 「대통령 공약사업」, 그것도 비효율적인 장기사업에 썼다. 근본 처방인 산업구조조정과 무역수지개선 노력은 뒷전이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무신경하게 예산 팽창을 반복했다. 정부는 수출이 줄면 「계절적 요인」이라며 딴전만 피웠지 대책은 세우지 않았다.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은 신경제다, 세계화다 하며 구호를 남발하기에 바빴다. 국민소득 2만달러니, 세계 5강이니 하는 허황된 꿈을 국민들에게 심어주는 게 대통령의 역할인 줄로 착각했다. 4년8개월 사이 경제부총리를 일곱번이나 바꾸었다. 경제의 지도력은 표류했고 행정은 공회전했다. 그런 가운데 끝내 올해들어서 한보사태 기아사태 등 재벌 좌초가 잇따르면서 국가신인도가 곤두박질쳤다. 어느 것 하나 처리의 타이밍을 잃지 않은 것이 없다. 이에 따라 외국빚을 더이상 빌리지 못하고 빌린 돈의 상환요구까지 몰려 결국 IMF 「신탁통치」를 불러들인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이 경상수지적자와 외채위기를 걱정한 것은 지난해 상반기부터였다. 멕시코사태의 재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정부는 귀를 막았다. 국내에 풍족했던 달러는 무서운 외국빚이었지만 정부는 달러쓰기를 오히려 장려했다. 해외여행을 부추기는가 하면 해외이주시 달러를 넉넉히 가져가서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덜라는 정책까지 나왔다. 이를 믿은 국민들은 해외여행과 유학비 등을 마구 쓰면서 올들어 9월말까지 61억1천만달러의 무역외적자를 기록했다. 위기때마다 엔고현상 또는 반도체호황 등 운이 좋아 버텨왔던 한국경제는 결국 이같은 변수가 사라지자 허망한 속살을 드러낸 것이다. 정부 기업 근로자 소비자 할 것없이 냉정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다시 일어서기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윤희상·임규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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