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전쟁과 폭력 뒤에 숨은 ‘돈의 고리’

  • 동아일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과 돈의 역사/던컨 웰던 지음·윤종은 옮김/360쪽·2만4800원·윌북


중세 초기 유럽의 왕들은 바이킹족의 약탈을 막기 위해 조공을 바쳤다. 이때 조공 마련을 위해 거둬들인 세금을 ‘데인겔드(Danegeld)’라 한다. 협박에 굴복해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는 막대한 손실처럼 보이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바이킹들이 조공으로 얻은 돈으로 유럽의 상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면서 생산과 무역이 빠르게 성장하고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왕이 조공을 마련하기 위해 농민들의 세금 부담을 늘리자 농민들의 생산량 역시 증가하는 구조가 형성됐다고 한다.

1000년 전 바이킹 시대의 약탈부터 현대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인류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전쟁과 폭력을 ‘돈’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경제학자이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특파원인 저자는 전쟁을 지도자의 광기나 비합리적 선택의 결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그 대신 각 시대 사람들이 처한 조건 속에서 결정한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단 시각을 갖고, 전쟁과 폭력이 왜 인류 역사 내내 반복돼 왔는지를 짚어낸다.

바이킹과 달리, 다른 국가를 침략한 이후 국운이 기우는 경우도 있다. 1492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가 신대륙을 발견한 뒤 스페인은 아즈텍과 잉카 제국을 정복하며 막대한 금과 은을 본국으로 들여왔다. 그러나 금은의 대량 유입은 물가 급등을 불러왔고, 여기에 의회와 협력하지 않은 국왕 펠리페 2세의 독단적 통치가 겹쳐 스페인은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을 자멸로 이끈 성과 보상 체계, 중세 유럽 마녀사냥 광풍의 근본 원인을 ‘기후 변화’에서 찾는 가설 등 전쟁과 폭력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인류가 어떤 체제와 동기 속에서 움직여 왔는지를 깊이 분석한 점이 눈에 띈다.

현대의 군사 전략과 정책은 물론이고, 조직 운영과 권력의 작동 방식까지 돌아보게 한다. 전쟁을 과거의 비극적 사건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폭력과 갈등이 어떤 경제적·제도적 선택 속에서 반복돼 왔는지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대목이 흥미롭다.

#바이킹#중세 유럽#전쟁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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