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에 단역만 5개 하고 300만 원을 벌었을 때 (기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3일 개봉하는 영화 ‘정보원’에서 ‘원톱’ 주연을 맡은 배우 허성태(48)는 무명 시절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영화는 허 배우가 데뷔한 지 14년 만에 맡은 첫 주연작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직장생활했을 때보다 더 바쁜 것 같다”며 웃었다.
요즘 연기자들 가운데 그만큼 비열하고 ‘더러운’ 느낌마저 주는 개성파 배우가 또 있을까. 2021년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1의 최악 빌런 장덕수를 연기하며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허성태이지만, 그의 이름 앞에 ‘배우’란 수식이 붙은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LG전자 등 안정된 대기업에 다니던 그는 2011년 SBS ‘기적의 오디션’을 통해 34세의 나이에 연기를 시작했다. 프로그램에선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막상 ‘늦깎이 배우’를 써주려 하는 곳은 거의 없었다. 허 배우는 “다들 말리던 길을 선택했으니 흐지부지 몇 년 하고 접을 순 없었다”고 했다.
인내 끝에 기회가 찾아온 건 2016년 영화 ‘밀정’에서였다. 하시모토(엄태구)를 도와주는 정보원으로 출연한 그는 이정출(송강호)로부터 뺨을 맞는 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마흔 살 신인배우’로 자신을 소개했던 그는 이후 2017년 영화 ‘범죄도시’, 2019년 영화 ‘말모이’ 등에서 잇따라 깊은 인상을 남겼다.
디즈니 시리즈 ‘카지노’에서 차무식(최민식)이 서태석(허성태)의 인상을 두고 하는 대사(“세수대야 X같이 생겼네”)에서도 드러나는 개성 있는 마스크가 그의 강점이다. 하지만 그만큼 연기에 대한 노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자리에서 허 배우는 의외로 서글서글한 인상을 빛내며 “저는 주연 욕심도 없었고, ‘누구처럼 되어야 겠다’ 생각한 적도 없었다”고 했다.
“하루살이로 살았어요. 오늘 찍는 걸 재밌게 잘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면서요. ‘여기까지 갈거야’란 생각이 없었는데도 지금까지 온 게 운이 좋았던 거죠. 인복이 좋습니다 제가.”
영화 ‘정보원’은 강등당한 왕년의 에이스 형사 오남혁(허성태)과 굵직한 사건들의 정보를 제공하며 눈먼 돈을 챙겨온 정보원 조태봉(조복래)이 우연히 큰 판에 끼어들며 벌어지는 범죄 액션 코미디다. ‘SNL 코리아’에서 ‘코카인 댄스’를 선보이며 웃음을 자아냈던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몸을 사리지 않는 코믹 연기를 펼친다.
“어떤 분위기든 심취하지 않으려 한다”는 허 배우. ‘오징어 게임’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팔로어가 100만 명이 넘었을 때에도 그는 “거품은 빠지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도 연기를 하면서 내 자신에 대해 오해하지 않을 것이고 이건 변하지 않을 마음”이라고 말했다.
“매번 연기를 안 했으면 어쩔 뻔했나 생각해요. 시간을 되돌려도, 같은 고생을 한다고 해도, 연기를 했을 거예요. 카메라 앞에서의 시간이 너무 좋아요. 천직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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