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키 158은 말이 안된다”는 말에 마음 굳혔다…작은 키의 광대 일오팔[복수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4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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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 158cm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오팔’(본명 이명재)의 모습. 〈복수자들〉 캡처
키 158cm의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오팔’(본명 이명재)의 모습. 〈복수자들〉 캡처

‘키 작다’가 칭찬이 되는 그날까지
어느 유튜버 소개글에 나온 문구입니다. 이 유튜버 이름은 ‘일오팔’. ‘성은 일, 이름이 오팔’은 당연히 아닙니다. ‘일오팔’의 본명은 이명재(27·남).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한 그는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입니다. 그가 ‘일오팔’이란 이름을 갖게 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키가 158cm이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작았던 그는 중학교 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습니다. 의사에게 “더는 못 큰다”는 진단을 받은 겁니다. 갓 중학생이 된 아들의 키가 더 크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미안하다”며 울먹였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어린 아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자기연민에 빠져 스스로 초라한 인간이 되지 말고 보란 듯이 살아 보겠다”고 독하게 마음 먹는 계기가 됩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그의 키는 여전히 158cm입니다. 하지만 ‘작은 키’를 개성으로 내세워 47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됐습니다. ‘키 작다’가 칭찬이 되는 그날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유튜브 크리에이터 일오팔을 〈복수자들〉이 만났습니다. 동아일보 유튜브 ‘기웃기웃’에서 그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주소를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어도 됩니다 https://youtu.be/x-cIuqLquxA)

작은 키를 개성있는 캐릭터로 내세워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일오팔. 〈일오팔〉 캡처
작은 키를 개성있는 캐릭터로 내세워 유튜브 콘텐츠를 만드는 일오팔. 〈일오팔〉 캡처
―유튜브 채널 슬로건(‘키 작다’가 칭찬이 되는 그날까지)이 인상적입니다.
“그런 날이 오겠냐며 어떤 사람은 비웃을지 몰라도 적어도 저는 진심입니다.(웃음) 사실 연예계에도 작은 키로 활동하는 분들이 저 말고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분들 활동을 보면서 저도 응원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누군가에겐 그런 존재가 되고 싶습니다.”

―‘165cm, 170cm 정도만 됐어도’ 같은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거짓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저는 어중간하게 작을 바에 아예 확 작은 게 낫다고 생각해요. 시장 논리로 따져보면 희소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키 작은 남자들 사이에서 저처럼 확 작은 사람이 오히려 경쟁력이 있지 않나.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오팔은 스스로 ‘광대’라고 부릅니다. 그래서일까 개그맨, 연예인, 유튜버 보다는 ‘광대’라는 단어가 일오팔에게 더욱 맞는 옷처럼 느껴집니다. 일오팔의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탕후루, 마라탕 등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 ‘김한강 시리즈’와 키작남(키 작은 남자)이 겪는 생활 속 애환을 담은 ‘일오팔 시리즈’. 2~3분 남짓 짧은 콩트에서 다양한 상황에 처한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영상에서 일오팔은 화려하고 잘난 사람이기보다는 조금은 부족하고 찌질한 사람이 됩니다.

일오팔의 ‘불쌍한 표정’을 극대화해서 만든 ‘김한강’ 캐릭터. 〈일오팔〉 캡처
일오팔의 ‘불쌍한 표정’을 극대화해서 만든 ‘김한강’ 캐릭터. 〈일오팔〉 캡처
―일오팔을 두고 ‘찌질 미(美)’가 있다고들 합니다.
“처음 유튜브 시작할 땐 다양한 시도를 해봤어요. 근데 팬들이 저의 불쌍하고 우울해하는 표정을 특히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우울한 표정 연기를 하려면 어떤 캐릭터가 좋을까 고민한 끝에 ‘김한강’ 캐릭터가 탄생한 거예요.”

―리얼리티 보다는 연기 콘텐츠가 많은 편입니다.
“원래는 정통 연기를 하고 싶었어요. 셰익스피어 희곡도 다 읽고 연구를 많이 했거든요. 유튜브 시작하면서도 연기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요. 그러다 ‘김한강’ 캐릭터를 만들었고 다양한 상황극을 보여줄 수 있게 됐죠. 언젠가 정극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찌질하고 처량하고 불쌍한 캐릭터, 저한테 익숙한 역할이요.”

―광대가 되고 나서 가장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면요?
“제 영상을 보고 팬들이 응원을 많이 보내주세요. 그 중에서도 키가 작은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힘을 많이 얻는다고 메시지를 보내실 때가 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 광대하기 잘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저도 그 친구들 메시지가 진심으로 와닿고 감사하고 또 힘을 얻게 되거든요.
한 번은 길거리에서 저보다 작은 남자 분(154cm)이 오셔서 ‘작은 키 때문에 힘들다’고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제 영상을 보던 분이셨어요. 처음 만나는 사이였지만 진심을 터놓고 대화했어요. 표정이 밝아지시는 걸 보고 저도 한참동안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복수자들〉과 인터뷰 중인 일오팔. 〈복수자들〉 캡처
〈복수자들〉과 인터뷰 중인 일오팔. 〈복수자들〉 캡처
‘작은 키’는 누군가에겐 콤플렉스일 수 있습니다. 일오팔도 처음부터 ‘키 작다’는 말이 듣기 편했던 건 아닙니다. 악의 없이 던지는 말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습니다.

―학창시절 때 놀림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까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친구들도 정말 많이 놀렸고요. 누군가 악의를 갖고 심하게 괴롭혔다기보다는 ‘키 작다’며 일상적으로 놀림을 받다보니까 지속적인 데미지가 오는 거예요. 별 생각 없이 던지는 말들이 축적되다보니 상처가 되더라고요.”

―지금은 오히려 ‘작은 키’를 전면에 드러내는 콘텐츠를 만들잖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때 친구들은 저를 두고 이렇게 말했어요. ‘쟤 진짜 웃긴 애다’ ‘쟤 키는 작은데 웃기긴 진짜 웃기다’ 친구들 사이에서 ‘웃긴 애’로 통하는 게 자연스러워지면서 중학교 졸업할 때쯤 스스로 결심했어요. ‘나는 광대해야겠다’고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어요. 유튜브도 고등학교 친구가 먼저 제안한 건데, 그 친구가 지금은 채널 ‘일오팔’의 PD를 하고 있어요. 친구가 유튜브하자면서 해준 말이 저한테 엄청 꽂혔거든요. 대놓고 이랬어요.”

남자 키 158cm은 진짜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너 유튜브 해야 된다.
―얼핏 들으면 기분이 나쁠 만한 말인데요.
“물론 기분 나쁘게 들을 수 있는데 전 아니었어요. 그 한 마디에 제가 완전 설득이 되어버린 거예요. 솔직히 제 키가 어중간하게 작은 것도 아니고 아주 확 작잖아요. 그게 약점이 아니라 개성이자 캐릭터, 강점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거죠.”

―한국 여성 평균(161cm)보다 키가 작은 건데 연애할 때 고충은 없나요?
“남들 하는 만큼 해왔습니다.(웃음) 연애 경험은 10회 정도 되는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 모습을 멀리서 실루엣으로 보면 키도 몸집도 작아서 왜소하잖아요. 근데 가까이에서 앉아서 대화하면 ‘작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반전 매력이 있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자신감이 작은 키를 보정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감을 갖게 되면 성격도 좋아집니다.”

―주눅 들거나 위축되는 법 없이 항상 이성 앞에선 당당한 편인가요?
“물론 저보다 5cm 이상 크신 분들은 조금 부담스럽긴 합니다. 비 오면 우산을 같이 쓸 때가 있는데, 제가 우산을 들면 (저보다 키 큰) 여자분들 눈을 자꾸 찌른다고 하더라고요.(웃음)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멀어지는 것 말고는 연애에 있어서 키는 전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복수자들〉과 인터뷰 중인 일오팔. 〈복수자들〉 캡처
〈복수자들〉과 인터뷰 중인 일오팔. 〈복수자들〉 캡처
유튜브 채널 ‘일오팔’은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채널 개설 2년여 만에 구독자 45만 7000명을 달성했습니다. 주력 콘텐츠인 쇼츠(60초 이하 유튜브 영상) 최고 조회수는 7045만 회를 찍었습니다. 최근엔 곽튜브, 빠니보틀 등 인기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다수 소속된 샌드박스로 소속사를 옮기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입니다.

―부모님께서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습니다.
“저번 명절 때 부모님 뵀는데 너무 기뻐하시더라고요. 최근엔 할머니랑 손잡고 걸어가는데 저를 거리에서 알아봐주시는 분이 계셨어요. 사실 할머니께 제 직업(유튜브 크리에이터)을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았거든요. 근데 길거리에서 팬들이 알아봐주시니까 할머니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저도 무척 기뻤습니다.”

―꿈이 있다면요?
“거창한 꿈은 없어요. ‘키 작다’가 칭찬이 되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열심히, 잘 살아보겠습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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