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책에 빠져 시인 등단까지… “작은도서관, 내 세상을 넓혔죠”[작은 도서관에 날개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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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공동 캠페인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당진 신진문학인’ 50대 작가 홍정임
7년전 작은도서관 처음 접한 뒤… 책 한권 안 읽다 매주 독서 토론회
작년 코로나로 도서관 잠시 문닫자… 집에서 홀로 시 쓰며 아쉬움 달래

홍정임 씨가 5일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서 지난해 11월 펴낸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를 들고 있다. 옆에 
있는 캘리그래피는 책 속 감명 깊은 구절이나 자신의 시를 그가 직접 쓴 것이다. 당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홍정임 씨가 5일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서 지난해 11월 펴낸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를 들고 있다. 옆에 있는 캘리그래피는 책 속 감명 깊은 구절이나 자신의 시를 그가 직접 쓴 것이다. 당진=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마음속 스크린이 불을 켜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람들이 손짓을 해요/ (중략) 시간은 해일처럼 눈앞에 다가와/ 현실의 문을 자꾸 두드리는데/ 아! 어떡하죠/ 이제야 재미를 알아 버렸는데’(시 ‘작은 도서관’ 중)

충남 당진시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 이용자 홍정임 씨(55)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잠시 도서관이 문을 닫자 집에서 홀로 시를 썼다. 도서관에서 책에 푹 빠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창작을 시작한 것. 그는 17편의 작품을 출품해 ‘당진 신진 문학인’에 선정됐고 65편의 시를 모아 지난해 11월 시집 ‘익숙함과의 이별 후’(책과나무)를 펴냈다.

5일 찾은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194m² 규모로 아담하지만 약 1만8000권의 책으로 가득했다. 홍 씨는 자신의 시집을 들어올리며 시에 담은 마음을 수줍게 고백했다.

“책에 푹 빠져 있는데 도서관 문을 닫을 시간이 된 거예요. 얼마나 아쉬워요. 책 속에서 만나야 할 사람과 가야 할 곳이 아직 남았는데 떠나야 하는 제 기분이 시에서 느껴지시나요.”

작은도서관은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전국 각지에 짓고 있다. 2008년 경기 부천시 도란도란도서관으로 시작한 작은도서관은 전국 곳곳을 채워 100개에 달한다. 2008년 5월 문을 연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은 7호 작은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2019년 이 작은도서관의 전면 리모델링을 했다.

제주가 고향인 홍 씨는 2000년 결혼과 동시에 당진에 자리 잡았다. 15년 동안 전업주부로 남편 뒷바라지와 두 아들의 육아만 하고 살다가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야 여유가 조금 생겼다. 남편과 두 아이를 아침에 챙겨 보낸 뒤 텅 빈 집에서 헛헛한 마음을 달래던 차에 지인에게 “작은도서관에서 독서 토론 동아리 회원을 모집하니 가입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전업주부로 지내며 책 한 권 제대로 못 읽었던 그였지만 2015년부터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에 드나들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7년 동안 1주일에 1번씩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내 생각과 남의 생각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책 한 권 안 읽던 제가 독서 토론 동아리 회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그는 독서를 시작한 뒤 좋아하는 문장을 필사하다가 2016년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시작해 캘리그래피 준전문작가 자격증까지 땄다. 올 8월 수필 창작 동아리 회원들과 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책은 의식을 확장하고, 영혼을 성장시키는 최고의 도구예요. 책을 빌려 읽은 덕에 사유하는 힘이 생겼죠. 난생처음 시를 쓰게 된 뒤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2010년)의 주인공 미자(윤정희)처럼 인생이 달라졌어요.”

그는 최근 수필 창작 동아리에 가입해 에세이를 쓰고 있다. 올해 3월부터는 일주일에 두 번씩 초등학생들에게 시를 가르치고 있다.

“시바타 도요(1911∼2013)라는 일본 시인이 있어요. 평범한 할머니였지만 92세에 시 쓰기를 시작하고 98세에 첫 시집 ‘약해지지 마’를 펴냈는데 일본에서 150만 부가 팔려 화제가 됐죠. 저 역시 나이가 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했는데 작은도서관을 만난 뒤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습니다. 제 세상이 아주 넓게 확장됐어요!”



당진=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원당꿈초롱 작은도서관#당진#홍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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