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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낭만을 찾아서 [고양이 눈썹]

입력 2022-05-21 10:00업데이트 2022-05-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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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낭만(浪漫)은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입니다. 일본에선 ‘로망(ロマン)’으로 읽지요. 동아시아에서 유럽 언어를 가장 먼저 번역한 일본인들이 ‘Roman’을 음차(音借)한 것입니다. 로망은 뭘까요?

유럽 문명의 뿌리인 로마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고, 성경 철학 신학 법전 등 거의 대부분의 기록과 책자가 라틴어로 기록됐죠. 로마 몰락 이후 중세시대에도 라틴어는 여전히 귀족 왕족 등 지배계급의 공식 언어였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라틴어 대신 지금의 각국어의 뿌리가 된 언어로 말했고요. 라틴어는 지배·피지배 계급을 가르는 기준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대중의 언어를 정통 라틴어와 대비해 ‘로만쯔’ ‘로만니쓰’ 등으로 비하해 불렀습니다. 로마 사투리라는 뜻입니다. ‘로망’은 멸시의 단어입니다. 마치 조선 양반들이 한글 소설을 ‘언문 패설(稗說)’로 업신여겨 불렀던 것처럼.

귀족들이 철학 신학책을 라틴어로 보는 동안 서민들은 자기 언어로 쓰인 남녀상열지사나 기사들의 영웅담 소설에 열광했습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로맨스 소설의 원조가 됐다고 봐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로망’이란 어원은 꾸며낸 이야기, 즉 판타지 속 설정이라고 봐야겠죠. 주인공은 왕자나 공주 또는 기사였으니…. 대중들의 신분 상승에 대한 꿈을 대신해 준 것 같기도 하고요.


▽‘로맨스’ ‘낭만’의 핵심은 비현실입니다. 판타지여야 합니다. 일단 현실적이지만 않으면 낭만이라고 볼 수 있죠. 즉 현실의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죠.



단테가 14세기 쓴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 1472년 판. 라틴어가 아닌 토스카나 방언으로 기록해 당시 귀족들에게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현대 이탈리아어가 토스카나의 주도인 피렌체 방언을 표준어로 삼게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책이기도 합니다.

▽외국인이 찍어 올린 한국 풍경 사진은 종종 화제가 됩니다. 상당수의 댓글이 “여기가 한국이라고?”입니다. 익숙한 장소인데도 전혀 다르게 보이죠. 물론 ‘포토샵’을 너무 많이 하기도 했습니다. 현실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당황스럽죠. 외국인의 눈에는 한국의 풍광이 비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진과 예술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요? 판타지를 추구합니다. 저 또한 사진기자로서 사실과 진실에 근접하게 촬영해야 하는 의무를 알지만, 회화(繪¤·pictorial)적으로 찍고 싶다는 본능이 자꾸 솟구쳐 갈등을 겪습니다. 판타지와 낭만에 대한 욕구입니다.

2019년 6월


▽케이크를 먹어보는 것이 로망인 아이가 있습니다. 마침내 케이크 한 조각을 먹습니다. 꿈을 이룬 것이지요. 내친김에 두 조각, 세 조각을 더 먹습니다. 아뿔싸. 처음 먹었을 때보다 감동이 덜합니다. 만약 네 번째로 먹는다면 더 이상 만족감도 없고 배만 불러 오히려 고통이 될 지도 모릅니다. 이른바 ‘한계효용(限界效用) 체감(遞減)의 법칙’입니다. 이 법칙은 독일 경제학자 허만 고센(Hermann Heinrich Gossen)에 의해 정리된 것인데요, 변화무쌍한 인간의 욕구를 설명하기에 좋습니다.

저는 이것을 ‘행복 체감의 법칙’이라고 부르는데요, 꿈을 이루게 되면 행복감이 엄청 오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행복감이 점점 약해집니다. 돈 100만원을 갖는 것이 로망이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 목표를 이룹니다. 그런데 기쁨은 잠깐, 오히려 불안해집니다. 누가 내 100만 원을 훔쳐 갈까봐, 100만원으로는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이 돈은 더 이상 로망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나에게 주어져 있던 현실인 것입니다. 그냥 원래 있는 환경. 심지어 불편한 현실일 때도 있습니다.

2021년 9월


▽로망이 실현되면 행복감이 몰려오지만 이내 그 로망은 현실로 내려옵니다. 꿈을 이룬 사람의 잘못이 아닙니다. 원래 로망과 현실의 본질이 그렇습니다.

오히려 이때가 또 다른 로망을 꿈꿀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꿈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듯 일상생활에서라도 낭만도 찾고 가슴 설레는 것을 찾아 다시 떠나야겠죠. 하나의 꿈을 이뤘다면, 다시 다른 꿈을 찾으러 다시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다음 무대로, 다음 단계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앞으로 혹은 옆으로 한발 한발 나아가는 것이겠죠.

현실과 로망의 비교표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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