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가 된, 놀이 같은 건축[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입력 2021-08-24 03:00수정 2021-08-24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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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르케 잉겔스가 디자인한 2020년 상하이 엑스포의 덴마크 전시관 외관(위 사진)과 내부 모습(아래 사진). 잉겔스는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상을 중국에 가져가 반년간 전시해 화제가 됐다. 사진 출처 BIG 홈페이지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인간의 문명을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그 기울기가 일정하게 상승하는 형태가 아니라 불규칙하게 올라가거나 간혹 반대로 내려가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에 존재했던, 지금보다 정신적으로 훨씬 앞선 문명이 야만의 힘에 의해 희미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런 반복이 인간의 역사이며 문명의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새로운 문명이 나타날 즈음에는 반드시 세기말의 양식이라고 부를 수 있는 혼란스러운 현상이 생기곤 하는데 그런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근대에서 현대로 전환되는 시기를 보면 어떤 폭발적인 에너지가 큰 힘으로 밀어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은 보편적이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민주적인 건축을 꿈꿨다. 그런데 그 양식이 고착되면서 아주 지루해지고 딱딱해져 갔다. 엄숙한 모던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 미스 판 데어 로에의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간결한 것이 더 아름답다)’를 비꼬는 ‘레스 이즈 보어(Less is bore·간결한 것은 지루하다)’라는 주장(로버트 벤투리)이 등장했고, 급기야 ‘예스 이즈 모어(Yes is More·긍정이 더 낫다)’라는 장난 같기도 하고 지나친 낙관주의 같기도 한 주장을 내세운 건축가가 나타났다.

예스 이즈 모어는 바로 덴마크 건축가 비야르케 잉겔스가 만든 건축 그림책 제목이다. 마치 무한한 긍정의 정신으로 프로젝트에 임한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그런 유연한 태도가 전 세계 클라이언트들이 그를 반기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1974년 태어나 40대 후반에 접어든 잉겔스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바쁜 건축가다. 그는 덴마크와 뉴욕을 오가며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가 짓는 건물은 늘 세상의 관심을 받는다. 원래 만화가가 꿈이었다는 잉겔스는 아버지의 권유로 건축학교에 입학해 가우디의 나라 스페인에서도 공부했고, 네덜란드 건축가 렘 콜하스의 사무소(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OMA에서 참여한 작업인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항으로 급진적 디자인을 적용해 모든 것이 사선으로 계획된 건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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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력과 만화가적 시각 때문인지, 그는 마치 장난을 하듯 간단한 도형으로 단순화해 직관적으로 건물을 만든다. 한눈에 들어오는 알기 쉬운 다이어그램과 직설적인 스타일이 반영된 건축물은 테트리스 게임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지붕에 스키 활강장과 도넛 모양 구름이 퐁퐁 솟아오르는 굴뚝을 갖춘 건물도 있다. 심지어 ‘2010년 상하이 엑스포’ 덴마크 전시관 디자인을 맡았을 때는 덴마크의 상징인 인어공주상을 중국에 가져가 반년간 전시하자는 의견을 내 결국 의회 승인까지 받았다.

V자와 M자 형태의 아파트 배치가 눈길을 끄는 집합주택 ‘VM하우스’(왼쪽)와 마당을 낀 테라스가 연결된 형태로 뒷벽면에 에베레스트를 그려 넣은 ‘더 마운틴’(오른쪽). 사진 출처 BIG 홈페이지
그는 건축과에서 학생이 시도했다면 무척 야단을 맞을 법한, 혹은 우리의 건축법규에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상상력이 풍부한 건축을 만들어낸다. “뭐 그렇게 심각할 필요 있어? 세상은 즐거운 일로 가득한 곳이야!” 그는 건축을 통해 마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어깨에 힘을 뺀 채, 진지한 낯빛을 거두고 ‘이런 건 어때?’ 하며 장난처럼 건네는 시도가 하나하나 거짓말처럼 실현되고 있다. 코펜하겐에 있는 ‘더 마운틴(The Mountain)’은 주차 공간을 건물 하부로 넣고 상부는 마당을 낀 연속된 테라스 하우스로 만든 공동주거 건물이다. 뒷면 벽에는 에베레스트를 그려 넣어 산이 거의 없이 평지로 펼쳐진 코펜하겐에 새로운 경관을 만들어냈다. 그의 사무소 BIG(Bjarke Ingels Group) 홈페이지를 보면 구글의 미국과 영국 사옥 등 전 세계의 주요 도시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픽토그램 형태 아이콘으로 반짝거리며 정렬되어 있다.

정해진 틀을 깨는 것은 무척 힘들다. 바꾸고 나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을까 생각하겠지만 고정된 사회적인 관습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혁명에 가깝다.

어릴 때 라디오를 틀어놓고 잠깐 졸다가 어떤 이상한 노래를 들으면서 놀라서 깬 적이 있다. 산울림이라는 당시 신인 밴드의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꺼야’라는 곡이었는데, 노래가 아니라 그냥 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이후에 그보다 훨씬 더한 랩이라는 장르도 나오고 비슷한 형식의 산문 같은 노래가 많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때는 큰 충격이었다. 이런 노래가 가능하다는 말인가. 마치 연극의 1막이 끝나고 2막으로 넘어갈 때 잠시 커튼이 내려지고 암전되듯, 세상의 모든 일이 잠시 암전을 거친 후 더욱 밝은 빛 속으로 드러나듯, 내 음악에 대한 인식의 지평도 그 순간 한 단계 확장됐다.

잉겔스의 건축도 그런 느낌이다. 이런 방식으로 건축이 가능하단 말인가. 건축은 땅 위에 상상을 투영하는 일이지만, 그의 방식은 좀 지나쳐 보인다. 아마도 이전 시대 엄숙주의나 젠체하는 건축에 대한 반항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탈적 건축’이 주류가 되고 유희 자체가 하나의 양식으로 만들어지며 많은 건축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무척 아이러니하며 심지어 ‘세기말스럽다’.

문명이 한 단계 도약하기 직전 나타나는 세기말 양식은 수다스럽고 번잡하고 가벼우며 약간은 냉소적인 특징이 있다. 잉겔스의 놀이 같은 건축이야말로 다가올 새로운 전환기를 예고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놀이 같은 건축#주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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