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는 소쇄원[임형남·노은주의 혁신을 짓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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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군 소쇄원에서 사랑채 역할을 하는 건물 ‘광풍각’을 멀리서 찍은 풍경(위 사진). 소쇄원은 얼핏 보면 대숲을 지나 나오는 계곡을 사이에 둔 언덕배기로, 산속의 한 귀퉁이 같다. 특히 소쇄원의 담은 안과 밖을 엮으며 길을 인도한다. 임형남 대표 제공
전남 담양군 소쇄원에서 사랑채 역할을 하는 건물 ‘광풍각’을 멀리서 찍은 풍경(위 사진). 소쇄원은 얼핏 보면 대숲을 지나 나오는 계곡을 사이에 둔 언덕배기로, 산속의 한 귀퉁이 같다. 특히 소쇄원의 담은 안과 밖을 엮으며 길을 인도한다. 임형남 대표 제공
조경(造景)이란 직역하면 경치를 만든다는 뜻이고, 일반적인 정의로는 정원을 조성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공간에 자연을 끌어들이는 일이다. 정원을 보면 그곳을 조성한 사람의 의도를 읽을 수 있고 자연을 대하는 그 나라 사람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다. 어찌 보면 유한한 건축에 영속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는 아주 중요한 행위임이 분명하다.

정원은 문화권마다 각자 개성을 갖고 처한 자연환경에 맞게 발전해 왔다. 동양과 서양의 양식이 다르고,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각자 독특한 양식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배경이 비슷한 한중일 조경을 비교해보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일본 정원은 예리한 칼로 땅 위에 선을 그은 듯 정밀하고, 때로는 자연을 그대로 얼려서 고정해 놓은 듯 명료하고 명상적이다. 중국 정원은 무척 많은 내용을 그 안에 집어넣고 꿈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듯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다. 그런 중국과 일본 정원에 관해 우리는 많이 알고 있으며 다양한 경로를 통해 경험도 해봤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전통 정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서울 창덕궁 후원이나 경북 영양군 서석지, 전남 완도군 보길도 부용동 정원 등 몇 군데 이름을 들어보거나, 간혹 가보기도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 한국 정원을 대표한다는 전남 담양군 소쇄원 역시 그 구성을 쉽게 읽어내기는 어렵다.

소쇄원은 개인적으로는 1980년대 초반 건축가 김수근이 극찬했다기에 호기심으로 가본 곳이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 건축 답사를 간 곳이기도 한데, 어느 추운 겨울날 광주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한참 헤매다 동네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곤 겨우 찾아 들어갔다. 호젓한 대나무 숲길이 짧게 이어지더니 긴 담과 멀리 몇 채의 한옥 건물이 보였다. 그곳이 소쇄원이었다.

잘 모르겠지만 좋은 곳일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만 한 조각 손에 쥐고 사흘 동안 시내에서 출퇴근하며 그곳에 앉아 있었다. 뭘 보아야 하며 무슨 감동을 받아야 할지 생각하면서 고적함 속에 잠겨 그 정원을 보았다. 당시만 해도 한적하기 이를 데 없어 보러 오는 사람은 하루 한두 명 정도였다. 그들도 어디선가 소쇄원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오긴 한 모양인데, 대부분 그리 넓지 않은 규모에 약간 실망한 듯 대충 훑어보고는 금세 자리를 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정원은 자연과 사람 간의 경계가 아주 모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원인지 알기 어렵다. 우리 조상들은 의미를 깊이 숨기고 의미가 쉽게 드러나는 것은 경박한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이 모호한 경계는 우리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이기도 하다. 가령 우리 문화에선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릿하다. 무대에서 배우들이 공연하는 동안 관객들은 “얼쑤” 하며 호응하고 추임새를 넣어준다. 그 에너지가 공연장 전체를 휘감는다. 그런 전통은 요즘 공연과도 아주 잘 맞아서 외국 가수나 밴드가 우리나라를 한 번 다녀가면 ‘떼창’과 객석의 열기를 잊지 못한다고 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내·외부 경계, 공간끼리의 경계가 흐릿하며 서로 넘나든다. 즉, 막힌 곳 없이 소통하며 뚫려 있다. 그런 조화와 소통이 우리 문화의 본질이고 소쇄원에서는 좀 더 심화한 기법이 사용되었다. 양산보라는 사람에 의해 16세기에 만들어진 소쇄원은 그 후손들이 잘 보존하고 있다. 이곳의 아름다움과 관람 포인트는 지을 당시 왕래가 잦았던 김인후라는 학자가 ‘소쇄48영’이라는 글로 남겨놨고, 다녀간 수많은 문인의 기록도 많다. 그 글들은 무척 구체적이어서 읽다 보면 마치 한 편의 영화 관람하듯 소쇄원을 감상할 수 있을 지경이다.

소쇄원은 그리 크지도 아주 정교하지도 않은 대숲을 지나 나오는 계곡을 사이에 둔 언덕배기로, 그저 산속 한 귀퉁이 같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양한 의미와 공간 장치들이 숨어 있다. 우선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소쇄원을 휘돌거나 관통하며 느릿하게 지나는 흙담이다. 담은 보통 경계를 짓기 위한 것이지만 여기에서의 담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안과 밖이 연결되는 공간 장치일 뿐이다. 입구에서 담을 끼고 밖으로 돌든 안으로 돌든 결국 소쇄원 안채 격인 제월당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담은 다시 제월당 앞마당에 나타난다. 작은 대문을 넘어 밖으로 나오면 다시 밖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소쇄원의 절정인 광풍각 안으로 인도된다.

소쇄원의 담은 안과 밖을 엮고, 길을 인도하는 담이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소통한다. 그리고 공간들은 어둠과 밝음, 넓음과 좁음, 평평함과 가파름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자연 지형을 이용한 공간은 지루할 틈이 없이 연속된다. 그렇게 담을 따라 돌다 보면 어느새 처음으로 왔던 장소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즉 소쇄원은 현대건축이나 공간에서 추구하는 3차원을 넘어서는 순환구조를 이미 구현하고 있다. 경계가 희미하거나 경계가 없는 공간. 그리고 그 안에 의미를 숨겨놓아 확정적이지 않고 스스로 의미를 조합해서 만드는 공간. 한국 조경의 특징은 바로 그런 지점에 있다. 소쇄원뿐 아니라 영양의 서석지 같은 한국 정원들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경계, 그리고 숨겨져 있는 많은 의미들은, 마치 열린 결말을 가진 잘 쓰인 책과도 같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대표
#뫼비우스띠#소쇄원#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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