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삼성은 잡스의 가격인하 압박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입력 2021-05-01 03:00수정 2021-05-0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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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컨버세이션: 대담한 대담/황창규 지음/432쪽·1만9000원·시공사
2004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의 애플 본사를 찾은 저자(오른쪽)가 애플 CEO 스티브 잡스(왼쪽)와 플래시 메모리 공급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저자는 “인간은 타인의 지혜에 의지하며 각자의 삶을 헤쳐 가는 존재”라고 말한다. 시공사 제공

저자의 이력은 21세기 세계 정보기술(IT) 발전과 함께했다. ‘반도체 메모리 용량이 매년 2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황의 법칙’을 2002년 발표한 뒤 이 법칙은 현재도 실현되고 있다. 이 통찰이 현실로 이어진 현장을 저자는 삼성전자 사장으로 이끌었다. 2014년 이후에는 KT 회장으로 인간과 사물이 연결되는 5세대(5G) 시대를 앞장서 열어갔다. 세계 IT 대전 현장에서의 경험을 저자는 ‘통찰, 도전, 열정, 동행, 공헌’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책은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2001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이던 저자는 이 회장의 호출을 받는다. 당시 일본의 도시바는 삼성전자가 D램 기술을 전수해주면 그 대신 낸드플래시(전원이 꺼져도 정보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삼성에 전수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저자는 ‘독자 개발에 승산이 있다’고 보고했고, 제안을 거절한 삼성은 1년 만에 도시바를 따라잡았다.

2001년은 IT 불황이 닥친 해이기도 했다. 어느 날 이 회장이 12인치 웨이퍼 개발 현황을 물었다. 저자가 “투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하자 질타가 쏟아졌다. “지금 투자를 안 하면 언제 1등을 해보고 글로벌 1등을 지킬 수 있겠나?” 당시 이뤄진 투자는 지금 한국 경제를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저자는 이 회장의 정확한 판단과 전폭적인 지원이 성과의 초석이었다며 ‘미래를 내다보는 자신만의 눈을 가지라’고 후배 경영인과 IT 기술인들에게 조언한다.

그는 애플 경영자 스티브 잡스와 팀 쿡을 2004년 12월 애플 본사에서 만났다. 삼성의 플래시 메모리를 장착한 MP3플레이어를 만들어 애플에 보낸 뒤였다. 잡스는 어마어마한 주문량을 강조하면서 가격인하 압박에 들어갔다. 이재용 당시 상무가 ‘시스템 LSI(D램, 플래시메모리 등을 제외한 비메모리 반도체)를 함께 공급하도록 타진하자’는 안을 제시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애플은 삼성 반도체의 최대 고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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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와의 만남은 KT 회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7년의 일이다. 저자는 “자율주행에서 가장 중요한 게 5G 기술이며, KT는 5G 기술의 전반적인 표준을 만들고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이를 시연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깊은 인상을 받은 머스크는 자신의 우주개발 업체 스페이스X로 그를 안내했다.

5G가 열어나가는 가능성 중 ‘GEPP’는 감염병 지역을 다녀온 사람을 로밍 데이터로 추적해 감염 확산을 막는 혁신기술이다. 2018년 이에 대한 다보스포럼 발표를 맡았던 저자는 “만약 2019년 말 세계가 GEPP를 작동시켰으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한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지혜에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배움을 쌓아가는 길은 어떠한가? 결코 누구도 외롭지 않은 길이 될 것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삼성#잡스#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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