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혼자 주택문제 해결해야 한다는 건 홍길동 콤플렉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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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미래’ 펴낸 유현준 교수
LH사태 예견 ‘유 도사’ 별명
“정부 주도 개발, 부패 일으켜… 코로나 후 집에 대한 생각 바뀌어
마당 같은 발코니 인기 끌 것”



요즘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52·사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건 ‘예언자’로 불린다. 유 교수는 정부의 2·4 부동산 대책 발표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도시 개발을 좋아하는 분들은 두 부류다. 지역 국회의원과 LH 직원”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LH 사태가 터지면서 해당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서 52만 회나 재생됐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유 도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20일 동아일보와 만난 유 교수는 “내가 한 말은 예언 축에도 안 든다. 신도시 난개발을 반대하며 LH를 언급한 것일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진지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나라엔 생태계가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신도시 개발한다고 공약을 내걸면 LH 직원들이 정책을 짜주면서 (정치적) 라인이 생겨요. 과거부터 LH는 정치권의 행동대장 역할을 해왔죠.”

유 교수는 25일 발간하는 책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에서 정부 주도로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 LH 사태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주택 문제를 정부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홍길동 콤플렉스’다”라며 “정의로운 정부가 직접 돈을 거둬 집을 지어주는 방식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런 개발 방식은 권력과 정보의 집중을 낳아 부패 문제를 일으키기 쉬워서다. 그는 “이제 LH의 업무를 최소한으로 축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책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간의 변화를 다뤘다. 집단감염 예방을 위한 자발적 자가 격리가 일반화되면서 집이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그는 외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당 같은 발코니를 갖춘 아파트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유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가상공간이 커지고 있지만 대도시는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교류를 원하기 때문이다. “연인과 만나지 않고 통화만 하면서 연애할 수 있겠어요. 코로나 같은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도 의료시설이 충분한 서울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사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그는 아파트가 과거 사회계층 간 이동에 있어 일종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들이 임대주택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집값을 안정화시켜 이들이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게 아니다. 실수요를 위한 1인 1주택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 그는 “10년 전부터 1, 2인 가구를 위한 작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했어야 했다.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건 공급 실패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 “아파트 공급을 LH와 같은 공공기관에만 맡기지 말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개발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린벨트를 풀어 신도시를 만드는 데 대해선 부정적이다. “서울의 뒷골목을 뒤져 보면 낙후된 다세대주택들이 많아요. 큰 단위로 개발할 필요도 없고, 중소 규모로 재개발, 재건축을 하면 됩니다. 여러 건설사가 중소 단지들을 지으면 다양한 종류의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부동산 정책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선 “지방정부의 힘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그동안 지방에 만든 혁신도시들은 거의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이 확보돼야 각 도시가 시민들이 선호하는 건축물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유현준#공간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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