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은 곧 애국’… 지덕체 천명한 고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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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과정에서 체육의 역할 조명

구한말 당시 지식인들은 체육 교육의 강화를 통해 국권 회복의 기초를 다지고자 했다. 1906년 민간 체육단체인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구한말 당시 지식인들은 체육 교육의 강화를 통해 국권 회복의 기초를 다지고자 했다. 1906년 민간 체육단체인 ‘대한체육구락부’ 회원들이 축구를 하는 모습. 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각 학교에서 군사들의 체조를 가르쳐 체육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이는 돌발사건이 생길 경우 학생들도 적과 맞서 싸우는 군사로서의 직분을 할 수 있게 수련을 쌓아두기 위한 의도다.”

1882년부터 일본과 미국 등 해외 각지를 둘러보고 온 유길준(1856∼1914)은 1895년 출간한 저서 ‘서유견문’에서 이 같은 내용을 남겼다. 그의 눈에 비친 서양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체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친다는 점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신체(身)는 마음(心)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유교적 가치인 ‘수신(修身)’이 몸을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이었다. 유길준의 소개 이후 당대 조선의 지도층은 “몸의 단련으로 국가에 보탬이 돼야 한다”라는 ‘애국’의 측면으로 체육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체육의 역할을 조명한 독특한 연구가 나왔다. 15일 한국사연구회의 학술회의에서 박윤정 연세대 박사과정이 발표한 ‘한말·일제 초 애국주의 체육론의 형성과 변용’ 논문이다.

논문에 따르면 구한말 당시 체육을 가장 강조한 이는 다름 아닌 고종 황제였다. 고종은 1895년 반포한 교육입국조서에서 ‘지양(智養)’, ‘덕양(德養)’과 함께 ‘체양(體養)’을 교육의 3대 강령으로 천명했다. 특히 고종은 운동회를 강조했다. 관립 영어 및 외국어 학교 주도로 개최된 운동회를 1896년부터 연합경기대회로 확대해 운영했고 ‘충군애국’과 ‘부국강병’이 들어간 운동가와 애국가를 부르게 하기도 했다.

개화기 지식인들 역시 체육의 가치에 주목했다. 한국통사를 저술한 역사학자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제2대 대통령을 지낸 독립운동가 박은식(1859∼1925)은 1907년 쓴 ‘문약지폐는 필상기국’이란 글에서 “일본은 무사도를 바탕으로 최근 30년간 교육을 발달시켜 청일·러일전쟁에서 연달아 이겼다”라며 “민족의 생명을 보전하고자 하는 길은 상무적 교육에 있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조선의 조정과 지식인들이 체육 활동을 강조하자 일제는 탄압에 나섰다. 조선총독부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1908년 6월 훈시를 통해 “조선의 계몽운동가들이 각지에서 학교 운동회를 통해 천박한 방법으로 애국심을 발동시키고 배일주의를 고취시키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일”이라며 체육을 통해 부국강병을 꾀한 당시 조선 지도층의 계획을 방해하기도 했다.

박 씨는 “그동안 학계에선 체육의 역사를 살핀 연구가 거의 없었다”며 “체육을 통해 근대화를 추진하려고 했던 당시 노력이 조명받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구한말 지식인#고종#체육은 곧 애국#지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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