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면 망한다’ 꼭꼭 숨긴 업신 보려 종부와 막걸리 한잔하며 친분 쌓아”

  • 동아일보

17년째 쓰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 국립민속박물관이 밝힌 탄생 비화

김명자 안동대 명예교수(가운데)와 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필진이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집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김명자 안동대 명예교수(가운데)와 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 필진이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집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업신(집안 재물을 지키는 수호신)을 조사할 땐 막걸리라도 사가지고 들어가야 해요.”

김명자 안동대 명예교수(72)는 민속신앙 연구에서 가장 어려웠던 일로 ‘업신’ 현장조사를 꼽았다. 부엌을 관장하는 조왕신이나 마당을 지키는 터주 등은 눈에 쉽게 띄는 데다 종부(宗婦)들이 얘기도 잘해주지만 업신만은 달랐다. 예부터 “업신이 나가면 집안이 망한다”고 해서 창고처럼 집안 보이지 않는 곳에 업신이 숨어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쌀을 담은 항아리나 짚으로 엮은 터줏가리를 업신으로 모시면서 외부엔 철저히 그 존재를 숨겼다.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자기 집의 업신이 뭔지 순순히 설명해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김 명예교수는 민속학에서 강조하는 라포르(Rapport·조사 대상과 정서적 친밀함을 이루는 것)를 만들려고 무던히 애썼다. 그는 “집안 며느리와 인간적으로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며 “여성의 참여를 극도로 금기시하는 유교 제의 과정도 며느리들을 통해 가까스로 연구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김 명예교수의 노고(勞苦)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올해로 17년째 발간하고 있는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 집약됐다. 이 사전은 우리나라 세시풍속부터 통과의례, 민간신앙, 설화, 전통예술을 망라한 대작으로 현재 5권이 발간됐으며 2024년까지 3권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다. 박물관 내 전문가는 물론이고 민속학과 인류학, 국문학, 역사학, 건축학 등 전공 학자 600여 명이 사전 편찬에 동원됐다. 주로 구전으로 전승되는 민속 속성상 연구자들이 전국의 마을을 일일이 방문 조사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강경표 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경북 울진군 후포항으로 ‘동해안 별신굿’ 장면을 촬영하러 갔다가 4일 내내 굿판에 매이기도 했다. 자료사진만 필요해 1박 2일 일정으로 내려갔는데, 굿을 주관하던 무당이 돌연 “같이 굿판에 참여해 웃고 즐겨야 사진을 사용할 자격이 있다”며 끝까지 굿판에 남아있으라고 요구한 것. 결국 연구팀 전원이 휴가를 내고 4일 내내 굿을 구경했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옛것에만 얽매이지 않고 현대의 풍속을 적극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예를 들어 크리스마스와 밸런타인데이는 서양에서 유래된 풍속이라 연구자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역사적 연원이 깊고 현대인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점을 감안해 사전 본문에 수록했다. 전통 성년의례나 효 사상에 기반을 둔 성년의 날, 어버이날도 본문에 들어갔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은 “전통은 변하기 마련이고 민속학의 범주도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어 사전에 이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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