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드라마 ‘가을동화’ 속 한 장면. 극중 태석은 은서의 마음을 돈으로 사겠다고 자신있게 말한다. KBS 드라마 ‘가을동화’ 캡처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 “돈으로 사랑을 살 수 없다.”
행복과 사랑의 가치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는 격언이다. 그러나 사실 이 말들은 행복과 사랑의 의미를 부각하기보다 돈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 위한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행복과 사랑을 돈으로는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아들에게 시간을 사준 아버지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많다. 혹자는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얘기하는 이는 그럴 정도로 충분한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지만 불행은 확실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반론은 이것이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이는 상점에서 잘못된 주문을 하는 사람이다.”
미국 작가 오 헨리의 단편 소설 ‘황금의 신과 사랑의 신’은 돈으로 사랑과 행복을 살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부잣집 아들 리처드는 “돈으로 안 되는 일도 있다”고 말한다. 이에 아버지는 이렇게 반문한다. “나는 돈이면 뭐든 된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있으면 말해봐라.”
리처드는 사교계 스타 랜트리를 사랑한다. 랜트리는 이틀 후 유럽으로 떠나 2년간 머물 예정이고, 리처드는 그가 유럽으로 떠나기 전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랜트리의 바쁜 일정 탓에 둘은 만날 틈이 없다. 유일하게 가능한 시간은 랜트리가 기차역에서 마차를 타고 브로드웨이 극장으로 이동하는, 기껏해야 6~8분 정도뿐이다.
그 시간 동안 리처드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래도 리처드는 기차역으로 나가 랜트리와 함께 마차를 탄다. 그때 전차와 마차가 뒤엉키며 대규모 교통체증이 발생한다. 경찰이 수습에 나섰지만 상황은 쉽게 정리되지 않고, 두 사람은 마차 안에 2시간 넘게 머물게 된다. 그 시간 동안 리처드는 사랑을 고백했고,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한다. 리처드의 고모는 말한다. “다시는 돈의 힘을 자랑하지 마라. 진정한 사랑 앞에서 돈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독자는 진실을 알게 된다. 리처드의 아버지가 마부, 전차 운전사, 경찰 등에게 돈을 건네 의도적으로 교통체증을 유발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용한 돈은 작품 배경인 1906년 당시 6300달러, 현 가치로는 약 23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다.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할 2시간을 만들려고 그만한 돈을 쓴 셈이다.
사람들은 돈으로 행복과 사랑을 살 수 없다고 말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런 걸 파는 가게가 없기 때문이다. “돈을 드릴 테니 행복을 주세요”라거나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사랑을 파세요”라고 주문할 수 있는 상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우리는 다른 방식을 사용한다. 식당에 가서 “맛있음을 주세요”라고 주문하는 대신 어떤 음식을 먹을지 선택한다. 그 선택이 맞으면 맛있음을 얻고, 틀리면 비싼 음식을 먹고도 실망한다. 물론 선택은 쉽지 않다. 여러 종류를 먹어보고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떤 음식이 입에 맞는지 스스로 파악해야 한다. 어떤 가게가 해당 음식을 잘하는지 알고 가는 건 기본이다. 제대로 된 가게에서 제대로 된 요리를 주문해야 비로소 맛있음을 가질 수 있다.
행복과 사랑 자체는 돈으로 살 수 없지만, 행복과 사랑에 이르는 수단은 구매할 수 있다. GETTYIMAGES.행복을 파는 가게는 없다
재미도 마찬가지다. 영화관에 가서 “재미를 사러 왔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재미를 줄 것으로 기대되는 영화를 고르고, 이를 직접 경험한다. 기대가 빗나가면 티켓 값이 아깝지만, 그렇다고 돈의 역할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시간 역시 흔히 돈으로 살 수 없다고 여겨지는 자산이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뿐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써도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을까. 출퇴근에 1시간 30분씩 걸리는 사람이 회사 근처로 이사하면 이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집값을 더 지불하는 만큼 시간을 사는 셈이다. 호텔에서 발레파킹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릴 수는 없지만, 24시간 중 내가 자유롭게 쓸 시간을 더 확보하는 것은 돈으로 가능하다.
행복과 사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돈을 주고 행복 자체를 살 수는 없다. 행복을 느낄 가능성을 높이는 선택지를 스스로 찾고, 이를 구매하면 된다. 물론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대화하는 시간도 즐겁다. 다만 돈이 있으면 그런 경험의 범위와 선택지가 넓어지는 것은 분명하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돈을 주고 사랑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을 느끼고, 관계를 깊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은 돈으로 마련할 수 있다. 돈이 없어도 사랑할 수 있지만, 돈이 있으면 사랑을 표현하고 유지하는 방법이 늘어난다.
행복해질 방법 스스로 찾아야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돈으로 행복과 사랑을 살 수 없다며 돈을 평가절하한다. 이는 행복과 사랑 자체를 돈으로 사려는 전제를 깔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게를 잘못 찾고, 잘못된 주문을 하고 있는 셈이다. 돈이 행복과 사랑을 직접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행복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길을 더 쉽게 열어주는 역할은 한다.
오 헨리의 소설 속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2시간을 사는 데 3억 원 넘는 돈을 썼다. 어떤 수준의 행복과 사랑에는 그만큼 비용이 들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돈을 제대로 쓰려면 단순한 자본뿐 아니라, 판단력과 상상력도 필요하다. 돈으로 행복과 사랑을 살 수 없다고 쉽게 말하면서 돈을 경시할 일은 아니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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