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의 DIY 본능이 ‘볼펜 꾸미기(볼꾸)’ 열풍으로 이어지며 동대문 상가가 호황을 맞았다. 3000원 이하의 저렴한 비용으로 개성을 표현하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왼쪽부터 유튜브 @bo_illak0915, @yeoning00, @ssyeoony 갈무리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폰꾸(스마트폰 꾸미기)를 넘어 이제는 ‘볼꾸(볼펜 꾸미기)’ 시대다.
단순히 사는 재미를 넘어 ‘만드는 재미’에 집중하는 Z세대의 ‘DIY 본능’이 평범한 필기구를 나만의 개성 넘치는 굿즈로 바꾸는 볼펜 꾸미기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27일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볼꾸’ 키워드 검색어 지수는 이달 6일까지 1 미만이었으나 19일 최고점인 100을 기록했다.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25일 다시 87까지 치솟으며 폭발적인 관심을 증명했다.
● 동대문 ‘파츠 성지’는 오픈런…때아닌 호황에 함박웃음
동대문 종합상가의 모습볼꾸 열풍의 중심지인 서울 동대문종합상가 5층 액세서리 상가는 Z세대가 몰리며 때아닌 호황을 맞았다. ‘파츠 성지’로 불리는 일부 가게 앞에는 영업 시작 전부터 대기 줄이 늘어서는 ‘오픈런’ 행렬이 이어지기도 했다.
상인들 역시 달라진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액세서리 매장을 운영하는 박모 씨(50대)는 “겨울은 원래 비수기라 사람이 많지 않은데, 요즘엔 볼꾸 제품을 보러 많이들 오셔서 활기가 돈다”며 “인기 파츠(부품)들은 입고도 잘 안 되고 있어 인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 저렴한 가격도 매력…“3000원으로 취미 생활해요”
김모 양과 이모 양이 직접 꾸민 볼펜의 모습.볼꾸가 단기간에 인기를 얻은 비결은 저렴한 가격에도 있다. 볼펜대와 파츠, 키링 등을 모두 합쳐도 3000원 이하 가격으로 ‘나만의 볼펜’을 가질 수 있다.
성북구에서 아침 일찍 동대문을 찾은 이모 양(16)은 “SNS에서 볼꾸 영상을 보고 여기가 유명하다고 해서 오전 9시 반 오픈 시간에 맞춰 왔다”고 전했다. 이날 함께한 김모 양(16)도 “원하는 색, 장식 등을 직접 꾸밀 수 있어 좋다”면서 “한 달 용돈이 5만 원인데 가격도 3000원 이하라 적당하다고 느꼈다”고 웃어 보였다.
학생들에 한정된 유행도 아니다. 직장인 김모 씨(30대)는 “단순한 볼펜이라 생각하면 비싸겠지만, 직접 원하는 대로 조립하는 취미 생활로 보면 매우 저렴하다”며 선물용으로도 몇 개 구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엄마는 ‘필통’, 딸은 ‘볼펜’… 세대 관통하는 꾸미기 본능
인스타그램 ‘#볼꾸’ 해시태그를 검색한 모습. 인스타그램 갈무리볼꾸가 유행하자 1990년대 부모들 사이에서는 과거 ‘필통 꾸미기’ 추억이 떠오른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붙여 직접 만들던 ‘하드보드지 필통’에 열광했던 엄마 세대의 문화가 딸 세대의 ‘볼펜 꾸미기’로 연결됐다는 분석이다.
중학생 조카와 동대문을 찾은 문 씨(35)는 “예전에는 좋아하는 가수 사진을 인쇄해 필통에 붙이고 나만의 필통을 만들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제 볼펜도 꾸미는구나 싶어서 보니 꽤 예쁘더라. 회사에서 쓰면 되겠다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 “세상에 단 하나…자기표현+만족 충족”
이러한 ‘볼꾸’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기표현 욕구와 실용성이 결합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볼펜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는 도구”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결과물로 자기표현과 자기만족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통·다이어리·볼펜 등 필기구에 꾸미기 문화가 접목된 것에 대해선 “공부를 시작하기 전 책상을 정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며 “평생을 공부하며 살아야 하는 한국인에게 즐거운 마음가짐을 갖기 위한 의식”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어릴 적은 학교 책상에, 나이가 들면 직장 책상에 앉는다. DIY 문화는 형태를 바꾸며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