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 ‘런치플레이션’ 시대, 구내식당 인기몰이
외식물가 인상에 구내식당 앞 긴줄… 외부인도 찾아 제한 시간 생기기도
‘점심 할인 카드’ 이용 15.3% 증가
유명 셰프와 메뉴 협업으로 품질↑
3일 서울 종로구 롯데카드 사옥 지하 구내식당이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방문한 직장인들로 붐비고 있다. 이한결 기자 always@donga.com
“일주일에 서너 번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어요.”
3일 오전 11시 반경, 서울 종로구 콘코디언빌딩에 있는 구내식당에서 만난 카드회사 직원 함상범 씨(39)는 식당 앞에 줄을 서며 이렇게 말했다. 6년 전부터 이 사옥에서 일한 함 씨는 주변 음식점 밥값이 크게 오르면서 구내식당을 더 자주 이용하고 있다. 함 씨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하면 한 끼당 점심값을 6000원 정도 아낄 수 있는데 이 돈을 미국 상장지수펀드(ETF)에 넣고 있다”고 덧붙였다.
밖에서 사 먹는 점심 한 끼 가격이 오르는 ‘런치플레이션(런치+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직장인들이 비교적 저렴한 구내식당으로 몰리고 있다. 고환율로 가파르게 오른 수입 물가가 국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수 있어 당분간 직장인들의 구내식당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는 대형 급식업체 중심으로도 유명 셰프, 외식 브랜드와 협업해 색다른 메뉴를 내놓는 등 유명 맛집 못지않게 식사 품질이 높아졌다.
● “저렴하고 맛있는 알짜식당 찾자”
서울 종로구 LX광화문빌딩 내 구내식당도 이날 많은 직장인으로 북적였다. 이곳은 빌딩에 입주한 회사 직원뿐 아니라 외부인도 이용 가능하다. 시간 제한이 있어 낮 12시 20분부터 입장할 수 있다. 식권을 사려 줄을 선 직장인 강경모 씨(32)는 “추어탕을 자주 먹었는데, 1만3000원을 넘긴 뒤부터 안 갔다”며 “좋아하던 음식점들이 가격을 다 올려서 저렴한 식당을 찾다가 이곳을 알게 됐다”고 했다.
외부인에게 개방된 사내 식당을 돌면서 싸고 맛있는 알짜 밥을 찾는 사람도 많다. 직장 동료와 이곳을 찾은 나인균 씨(47)는 “여러 구내식당을 다녀봤는데 여기 밥이 맛있어서 매주 한 번씩 온다”고 했다.
원래도 사람이 많았지만, 최근 구내식당은 더 인산인해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 인근 대형 보험사가 지난해 12월 월간 사내식당 이용 건수를 집계해 보니 1만9756건으로, 1년 전보다 2683건(15.7%) 늘었다. 하루 평균 이용 건수도 전년보다 85건 늘어난 898건으로 집계됐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은행 구내식당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2월 월간 이용 건수는 1년 전보다 1195건(13.3%) 늘어난 1만147건이었다. 한 해 전보다 영업일수가 하루 적었는데도 식당 이용자는 많았다.
외부인이 많아 직원들이 불편을 호소해 개방 시간을 제한하는 곳도 적지 않다. ‘11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외부인은 안 받는다’는 안내문이 걸린 곳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구내식당 인기몰이의 가장 큰 이유는 단연 저렴한 밥값에 있다. 종로구의 한 카드사 식당은 직원에게 6000원, 외부인에겐 메뉴에 따라 8000∼1만 원을 받는다. 광화문역 인근 한 대기업은 8000원 단가 식사를 직원 복지 차원에서 1500원에 제공한다. 6500원은 회사 부담.
회사 인근 식당에서의 맛있는 한 끼는 직장인의 낙이었지만, 요즘은 비싼 가격 때문에 고통이 된 지 오래다. 간편결제 플랫폼 NHN페이코가 ‘모바일 식권 서비스’에서 결제된 약 900만 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상반기(1∼6월) 평균 점심 식사 지출은 9500원이었다. 8년 전(6000원)에 비해 약 58% 올랐다.
먹거리 물가가 높은 지역일수록 직장인들의 구내식당 이용률이 늘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강남(1만4000원), 여의도·서초(1만3000원), 마곡·판교(1만2000원), 송파·종로(1만1000원) 순으로 평균 밥값이 높았다.
● 점심 식사비 할인 카드 이용도 늘어
정부 통계로 본 외식 품목 가격도 고공 행진 중이다. 국가데이터처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외식 소비자물가는 5년 전인 2020년보다 24.7% 상승했다. 특히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김밥(38.3%), 햄버거(35.2%), 떡볶이(35.0%)가 5년 새 가장 많이 오른 3대 품목이었다. 도시락(34.7%), 짜장면(33.5%), 라면(31.6%) 등 과거 부담 없이 즐겼던 품목도 많이 올랐다. 2020년부터 5년간 소비자물가지수가 16.6% 오른 걸 감안하면, 직장인이 피부로 느끼는 ‘런치플레이션’ 고통은 컸다.
앞으로도 밥값은 오를 가능성이 크다. 쌀 정도를 제외한 식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만큼, 환율 상승이 밥값에 직격탄이 된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다소 잠잠해졌다고 해도 1450원을 넘나들고 있다. 수입 물가는 3개월 내외 시차를 두고 국내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도 끌어올린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환율 추이를 살펴봤을 때 2월부터 3, 4월까지 수입 물가가 소비자물가로 전이되기 시작할 것”이라면서 “요즘 들어 다시 환율이 오르고 있어 당분간 점심값이 떨어지긴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내식당과 함께 직장인들의 밥값 아끼는 비법 중 하나는 점심 식사 할인 카드다. 평일 점심시간(오전 11시 30분∼오후 1시 30분) 음식점에서 1만 원 이상 결제 시 1000원 할인받을 수 있는 새마을금고 ‘다원’ 체크카드는 이용 건수가 지난해 약 7103만 건으로 2년 전에 비해 15.3% 불어났다.
지갑이 얇은 2030세대는 점심 비용 절약에 더 적극적이다. 점심 시간(오전 11시∼오후 2시)에 음식점에서 1만 원 이상 결제하면 7% 할인을 제공하는 ‘BC 바로클리어플러스’ 카드는 2022년 4분기(10∼12월)에 2030 이용자 비중(43.0%)이 4050 이용자(53.6%)보다 낮았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 2030 비중(52.6%)이 4050 고객(42.9%)을 앞질렀다. BC카드 관계자는 “자산을 형성하는 단계에서 알뜰한 소비를 원하는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발급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 미슐랭 셰프도 모셔와… 구내식당은 진화 중
과거 구내식당은 싸게 한 끼 때우는 ‘짬밥’ 이미지가 강했다. 밥맛보다는 단가를 낮추기 위한 경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 스타 셰프와 협업한 특별 메뉴를 선보이는 등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졌다.
현대그린푸드는 올해 상반기(1∼6월) 마왕족발, 만석닭강정, 채선당, 유가네 닭갈비, 북창동 순두부 등 유명 외식 브랜드 24곳과 협업해 개발한 특별 메뉴를 구내식당에 출시한다. 지난해 ‘깐부치킨’과 협력해 내놓은 콜라보 세트가 사전 예약 1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자 협력 브랜드를 확대하기로 했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깐부치킨 콜라보 세트를 제공한 날 구내식당 이용률이 평균 7∼10%가량 증가했다”고 했다. CJ프레시웨이 역시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금별맥주, 노티드, 이남장설렁탕 등 50여 개 브랜드와 100여 종의 메뉴를 급식용으로 재구성했다.
삼성웰스토리는 지난해 미슐랭 1스타 한식 다이닝 ‘윤서울’의 김도윤 셰프, 일본 후쿠오카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니시무라 다카히토 셰프 등 유명 셰프 4인과 이색 파스타 메뉴를 선보였다. 아워홈은 구내식당에서 최현석, 정호영, 박은영 등 유명 셰프가 직접 조리해주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밋더셀럽’ 이벤트 등으로 직장인들 사이에 화제다.
다만 구내식당의 프리미엄화로 구내식당 식사비마저 오르고 있는 점은 직장인 지갑에 부담이 된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구내식당 식사비는 2020년 대비 24.8% 올라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을 웃돌았다.
한 대형 급식업체 관계자는 “식자재 물가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재료비가 많이 오르는 국면에서는 구내식당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상현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현재는 수입업체가 많지 않아 과점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수요가 조금만 늘어도 가격이 크게 오르는 구조”라며 “식자재 조달처 다양화 등을 위해 연구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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