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빈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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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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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당선작]박소정

 이제 창가에 남아 있는 화분은 몇 개 없었다. 그중에 제대로 꽃이나 이파리 비슷한 것이라도 피워 올린 것은 한두 개뿐이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반 아이들의 관심에서는 완전히 지워지고 있는 중이다. 나는 매주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들의 관심이 떠난 화분들이 어떻게 점점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는지. 나 빼고 그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는 아침에 와서 일주일에 한 번은 화분에 물을 줘야 했다. 어쩌다가 걸린 미화부장이라는, 말이 부장이지 한 학기 내내 주번인 것과 다름없는 이 감투 때문에 말이다. 가끔 고개를 돌리다 눈을 마주치게 되는 이 화분들처럼, 선생님이 미화부장을 부르면 아이들은 내가 이 반의 일원이라는 것을 기억해내는 것 같다. 처음에는 교실 비품을 관리하는 것보다, 선생님한테 이름이 불려서 아이들한테 주목받는 순간이 1초라도 있는 게 싫었다. 그런 내게 중학교를 다니는 동안 겪어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생일대의 과제가 찾아왔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특활 시간에 교재 밑에 공책을 깔아놓고,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반 분위기가 산만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럼 이제 두 사람이서 짝 지어 볼까요?”

 선생님 말씀에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들은 서로 눈짓과 손짓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누구와 짝을 할지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 내가 남는 그림이 완성되었다.

 반 애들은 하나둘 자신들의 짝을 찾았다.

 “아직 짝 없는 사람 있어요?”

 저 말에 손을 든 지 이번 학기만 네 번째다. 그러니까 나는 나 말고 손을 들어올릴 다른 한 명을 알 수 있었다. 나처럼 진화에서 도태된 인물. 학교에서 같이 지낼 무리를 잃는다는 것은 생존의 위협과 비슷했다. 정말 죽는 것은 아니지만 죽은 듯이 지낸다.

 역시나 오늘도, 나머지에 속하는 것은 나와 연지였다.

 “임연지랑 김순영.”

 두 이름을 말하는 순간 교실은 갑자기 스피커가 나간 것처럼 조용해졌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중간고사가 끝날 때까지, 이 반에서 겉도는 두 명의 인물이 완전히, 발표된 순간이기도 했다. 짝끼리 모여 앉아야 해서, 아이들이 일어나 분주할 동안 나와 연지는 기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연지가 내 쪽으로 올 생각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내가 연지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짝과 함께 짧은 연극을 만들 거예요. 어떻게 움직이고 말했을 때 내 감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을까요? 다양한 표현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연극을 만들어 발표한다는 이야기에 반은 한순간에 폭풍우를 맞은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나는 놀라움과 내가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5분 내외의 짧은 연극, 자유 주제라고 적었다. 연극은 몸으로 하는 것이니까, 몸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방법을 배울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내가 싫어하는 모든 것의 집합체였다. 그룹 활동. 거기에다가 몸 쓰기. 애들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 학교생활의 세 가지 커다란 악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 가지만 없어도 학교생활이 얼마나 편할까?

 나는 노트를 펴서 지금까지 써놓았던 이야기들 중에 쓸 만한 것이 없는지 살폈다. 어서 이 위기를 넘겨 버리자는 생각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페이지를 넘겨도 아이들 앞에서 발표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야, 뭘 봐!”

 노트를 넘기던 와중에 내 옆에 앉은 연지의 눈길을 느낀 나는 노트를 홱 덮어버렸다. 연지는 내 반응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작은 입술로 ‘미안’이라고 말했다.

 “너 쉬는 시간마다 뭐 쓰고 있잖아. 그중에 하나 연극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거 같은데.”

 “없어. 나 글 못 써.”

 괜히 과민 반응한 것 같아서 멋쩍어진 나는 노트를 가방에 대충 쑤셔 넣었다. 얘는 내가 쉬는 시간마다 뭘 하는지 어떻게 알지? 나는 연지가 쉬는 시간마다 뭘 했는지 떠올려봤다. 하지만 정말 쉬는 시간마다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글만 썼기 때문에 연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다.

 “넌 뭐 연극으로 만들고 싶은 얘기 없어?”

 연지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천천히 생각해 봐. 표현이 중요하다니까 자기 얘기를 하는 게 제일 좋을 것 같긴 한데.” 나는 마치 이쪽 분야의 선배인 듯이 말했다. 그러자 연지는 어떤 생각에 골몰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분이 지나고 3분이 지나도 닫힌 입은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영원히 열리지 않을 거 같던 연지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성경의 한 구절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가 떠올랐다. 연지는 딱 한 단어만 말했다.

 “화분.”

 그 한 단어에 나는 학기 초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내가 기억하기로, 연지가 반에서 그다지 친해지고 싶지 않은 여자애가 되어 버린 그 사건 말이다.

 “맞아, 그때 너 왜 울었어?”

 내 질문이 너무 직접적이었는지 연지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물었다기보다는 스스로도 뭔가를 얘기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나도 그런 느낌을 잘 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말로는 내 기분을 말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연극 연습을 하기 위해 무용실로 내려가라는 선생님 말이 들렸다. 우리는 체육복을 챙겨 지하에 있는 무용실로 향했다.

 무용실 바닥에 아이들은 두 줄로 앉았다. 선생님은 제일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불을 끄자고 말했다. 불을 껐지만 무용실의 창문이 워낙 컸기 때문에 별 소용은 없었다. 어쨌든 적당히 어두침침해진 무용실에서 연극 연습이 시작되었다. 우리들은 바닥에 앉아 다리를 쭉 폈다. 선생님의 자세를 따라서.

 “어깨로 슬픔을 표현해 봐요.”

 그 말에 아이들이 한꺼번에 웃었다. 나는 거울에 비친 어깨를 쳐다봤다. 어깨를 모았다 펴보았다 해보았지만 조금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꾸물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은 우습다 못해 징그럽기까지 했다. 나는 옆에 앉은 연지를 봤다. 연지는 몸을 최대한 둥글게 말고 있었다.

 “어, 너 좀 슬퍼 보이는데?”

 연지의 슬픔은 저렇게 혼자서 안으로 말리는 모양이구나 싶었다. 내 말에 연지는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면서 말했다.

 “너는 음, 거만한 사장 아저씨 같은데!”

 나는 왼쪽 어깨로 연지의 몸을 툭 밀었다.

 우리의 연극 연습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텅 빈 교실 안에서 진행됐다. 아이들이 청소까지 끝내고 난 텅 빈 교실은 어딘가 마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다. 연지와 나는 책상과 의자를 활용해 무대를 대충 만들고 연기 연습을 했다. 우리 둘 다 친구가 없어서 관객은 핸드폰 카메라뿐이었다. 우리는 촬영한 영상을 보았다. 연기 연습을 다 끝내고 가방을 챙기는데 창가에 있는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학기 초에 심었던 화분에서 싹을 틔워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식물은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은 죽은 화분을 모두 챙겨가라고 했지만 아이들이 늦장을 부린 탓에 꽤 많은 화분이 푸석푸석한 흙만 담긴 채로 창가에 남아 있었다. 혹은 몇몇 화분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내 화분의 경우가 후자였다.

 “근데 너 그때 왜 울었어? 새싹 뽑혔던 때 말이야.”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선생님이 키우라고 해서 키운 건데. 만약 그 뽑힌 새싹을 나 혼자 조용히 발견한 거였으면 안 울었을 거야. 근데 어떤 애가 새싹이 뽑혔다고 말했고 그게 반 아이들 사이를 술렁이게 했는데, 그 순간 그냥 눈물이 났어.”

 연지는 자기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을 마무리했다. 나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온 사이에 내 노트에 적힌 글을 읽고서 아이들이 웃고 있던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내 노트를 읽고 있던 아이들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아이들이 내가 쓴 글을 보고서 웃는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라 그 순간을 모면하려면 무엇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그 애들 중에 한 명이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비굴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때 웃지 말고 화를 냈어야 했는데. 그 뒤로도 나는 그 일만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멍청하게 느껴졌다.

 “그때 왜 울었을까. 너무 창피해.”

 연지가 말했다. 연지는 화분의 흙을 운동장에 털어 버리고 빈 화분을 들고 집으로 갔다. 교문 앞에서 나는 연지의 갈색 화분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연극에 이 화분을 등장시킬까?”

 “화분을?”

 “응, 그러니까 우리 얘기를 더 넣어 보면 어떨까 해서.”

 나는 연지에게 빈 화분을 받아와 밤새 대본을 수정했다. 나는 연지의 이야기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다음 날 연지에게 내 대본을 보여주었다. 쉬는 시간, 아이들이 뛰어놀고 시끄러웠는데, 내 노트를 읽는 연지와 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연지는 노트를 다 읽고 어떤 부분이 어색한지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를 꼼꼼히 알려주었다. 그리고 이 부분을 제일 좋다고 말했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모르겠는데 애들이 왜 이런 일로 울어?’와 ‘그런 짓을 하다니 심했다’로 나뉘었다. 그런데 나는 그 두 편의 어느 감정도 아니었다. 그 생소함. 그런 걸 커가며 여러 번 느꼈지만 얼마 뒤 그 빈 화분만큼 내가 그때 왜 울었지? 하고 생각나게 하는 건 없었다. 그건 결코 새싹 때문만도, 싹을 뽑은 아이 때문만도, 갑자기 웅성거리는 아이들 때문만도 아니었다.

 “이 대사 내가 잘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맞아, 그건 너한테 주려고 쓴 거야.”

 우리는 수업이 끝나면 교실에 남아 어떻게 말했을 때 어떤 기분이 잘 전달되는지 서로 주고받았다. 아이들은 제각기 준비한 연극을 연습하느라 반은 어느 때보다도 시끄러웠다. 점심시간 동안에도 대사를 외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렸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대사를 들어보며 우리 얘기가 너무 솔직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고, 바보같이 보일까 봐 무서워졌다.

 연극 수업이 시작될 때는 너무 긴장되어서 무대에 설 수 있을까 싶었다. 내가 떠는 것보다 연지는 꽤 의연해보였는데, 내가 너무 떨었기 때문에 의연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괜찮아, 5분이면 엄청 빨리 끝날걸?”

 그 말은 정말이었다. 하지만 빠르면서도 시간이 아주 천천히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서 연달아 스크린 샷으로 순간순간들을 기록해놓는 것 같았다. 무대가 깜깜해지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어느새 손을 잡고 있었다. 불이 켜지고 선생님이 말했다.

 “짧은 시간 안에 연극 만드느라 정말 수고했어요.”

 연지와 나는 무대 위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았다. 다른 아이들이 만든 연극을 보는 동안에도 우리의 연극이 아직 다 끝나지 않은 것 같았다. 몸이 떨렸다. 무언가를 시작했다가 끝냈다는 것을 몸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에 나는 있는데 한순간 아주 멀리 갔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나는 괜히 발가락 끝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몸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무대를 제외한 교실의 뒤편은 어두웠고 아이들은 연극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말들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순간에 있어서, 연지가 연극이 끝난 뒤 울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연지 옆에 있던 아이가 연지에게 휴지를 건넸다. 무대를 제외한 객석은 어두웠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2017#동화 당선작#박소정#빈 화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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