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표지에서부터 이어지는 발자국은 누나의 것인지, 누나를 찾고 있는 푸른 바지를 입은 주인공 꼬마 생쥐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뭐 둘 다라도 상관없을 거예요. 누나는 언제나 어디론가 사라지는 캐릭터이고 동생은 그런 누나를 노상 찾아다니니까요.
본문이 막 시작되는 첫 페이지에 등을 돌리고 앉은 생쥐가 보입니다. 빨간 바지를 입은 누나는 모로 누운 배 위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어요. 누나의 시선이 머무는 쪽에 곧 펼쳐질 이야기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은 그림 상자를 통해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도록 이끌어주지요. 이제부터 펼쳐질 풍경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건축가였던 저자의 2007년 작품이에요. 집요하리만치 빈틈없는 그의 연출은 화면에 나오는 어느 것 하나도 대충 그 자리에 두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이야기 속 할아버지는 포마드 깡통 안에 나무를 기르는데 열매 모양을 보니 식물성 포마드 원료인 산검양옻나무였어요. 그러니 놓칠 것 없이 하나하나 꼼꼼히 탐구하듯 보아도 좋을 거예요. 대상을 재현하되 사물들의 배치와 크기, 간격 등이 상식적이지도 당연하지도 않아서 다음 장을 넘길 때마다 깜짝 놀라게 돼요.
그 풍경 안에서 길 떠나는 아이 곁은 든든한 조력자 할아버지가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장면들을 자세히 보면 그 안에 누나도 보이는데요. 다만 보일 듯 말 듯 숨어 있는 누나를 찾으려면 한동안 그 장면에서 머물러야 합니다. 오만 데를 다 돌아다닌 누나는 식사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오지요. 푸른 바지를 입은 꼬마 생쥐도 마찬가집니다. 상상은 끝없이 간 데를 모르게 펼쳐지지만 일상은 지켜져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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