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교회가 유령을 불러냈다, 구원이란 이름으로

  • 동아일보

◇유령의 역사/장클로드 슈미트 지음/주나미 옮김/464쪽·2만5000원·오롯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보통 사람은 영생을 누릴 것처럼 산다.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한다. 목숨을 걸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심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상당수 종교는 메멘토 모리를 힘써 강조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바로 지금 대비하라는 거다.

이 책은 유럽 중세사회가 유령을 다루는 태도의 변화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저자는 유령을 보는 중세사회의 시각은 곧 메멘토 모리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장례식이 결국 산 자를 위한 행사인 것처럼 산 자의 꿈과 욕망, 죄의식이 죽은 자(유령)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중세 초기 교부(敎父)들은 유령이 게르만족의 미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이단시했다. 성경은 예수와 소수의 성인만이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했다. 초기 교회는 유령에 대한 언급조차 꺼렸다.

하지만 12세기 말부터 교회는 공공연하게 유령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옥과 구별되는 연옥이 등장하면서 구원을 부탁하기 위해 살아있는 친척을 찾아오는 ‘죽은 자’ 이야기가 떠돌았다. 종교와 도덕, 이데올로기에서 대중을 통제하려던 교회는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 교회의 방향 전환은 경제적 측면과도 맞물려 있었다. 죽은 친척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산 자의 노력은 교회에 대한 기부로 이어졌다.

중세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중세의 유령 이야기는 신앙심을 높이고 종교기관으로의 기부를 촉진해 교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적었다.

이 책은 단순히 중세 문헌만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그림과 조각에 담긴 유령의 이미지를 포착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유령의 역사#메멘토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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