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심마니가 자신이 캐낸 산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요즘에는 예전의 금기사항을 따르지 않는다. 동아일보DB
“입산을 앞둔 ‘어인마니’(우두머리 심마니)는 집 문 앞에 금줄을 하나 치고 황토를 두 줄로 깔아서 부정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다른 심마니들도 목욕재계를 하고 부부관계도 피했다. 이때는 월경하는 여자가 지은 밥도 입에 일절 대지 않았다.”
1970년대 한 심마니의 증언이다. 예부터 심마니들은 산삼은 산신이 점지해준다고 믿어 금기를 지켰다. 하지만 요즘 심마니들에게 입산 전 금기사항은 잊혀진 지 오래다.
우승하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발표한 ‘심마니 습속의 변화 양상’ 논문에서 강원 원주시 치악산에서 26년간 심마니로 활동한 우모 씨 등을 인터뷰해 요즘 심마니의 모습을 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심마니들의 변천사는 물질문명과 개인주의라는 시대적 흐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예컨대 교통편이 마땅치 않았던 예전에는 심마니들이 보통 한 달간 산에 머물며 집단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차량을 이용해 산 접근이 쉬워진 요즘 심마니들은 길어야 일주일 동안만 산속 생활을 한다.
연장자인 어인마니를 중심으로 중간어인(2인자), 정재(취사 담당자), 소댕이(산삼 채취 경험이 없는 심마니), 염적마니(나이가 가장 어린 심마니) 등 여러 명이 뭉쳐 돌아다니던 심마니 조직도 훨씬 단출해졌다. 차 한 대로 모두 이동할 수 있도록 3명 내외로 구성되거나 아예 혼자 다니기도 한다.
또 1960년대까지만 해도 심마니들은 눈앞에 값나가는 약초가 있어도 일부러 캐지 않았다. 산삼에만 집중하겠다는 뜻이었다. 삼을 캘 때도 약효를 위해 쇠붙이를 쓰지 않고 맨손으로 땅을 팠다. 그러나 요즘 심마니들은 약초도 캐고 삼을 캘 때 연장 사용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 학예연구사는 “노동요로 곧잘 불리던 ‘심마니 노래’도 전승이 거의 끊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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