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했던 1990’s… 싱어송라이터 시대의 추억

임희윤기자 입력 2014-11-04 03:00수정 2014-11-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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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부터)윤상, 유희열, 서태지
《 고(故) 신해철에 대한 뜨거운 추모 열기를 두고 “가수의 사망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아파하는 경우는 오랜만”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신해철처럼 강력한 카리스마의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향수, 그런 이를 찾기 힘든 현 가요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신해철은 인간적 카리스마와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해내는 제작 능력이 동체에 있을 때 형성되는 강한 아우라를 지닌 음악인이었다. 싱어송라이터, 즉 작사 작곡을 하는 가수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1990년대는 가장 많은 스타 싱어송라이터가 활약한 시대다. 서태지, 신해철, 전람회와 김동률, 윤상, 토이(유희열), 이승환, 패닉, 신승훈…. 》

1990년대가 ‘마지막 스타 싱어송라이터 시대’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전문가들은 “2000년대 들어 음반시장이 몰락하고 아이돌 위주로 자본 흐름이 재편되면서 개성 있는 창작자 겸 가수가 주류로 떠오르기 어려워졌다”고 분석한다.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는 “지금은 싱어송라이터와 아이돌 그룹을 키우는 회사가 분리된 시대”라고 했다. 그는 “90년대는 아이돌이란 개념이 없었다. 인디 음악계에는 수많은 싱어송라이터가 있지만 그들의 음악이 대중에 노출될 기회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위부터) 이승환, 김동률, 더클래식
1970∼80년대를 지나며 세련된 한국적 가요 작법이 질 높은 해외 음악에 근접할 기술과 만났고, 가요계가 활황을 맞았으며, 세대 간 단절이 급격해지면서 ‘내 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줄 스타가 필요했던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1990년대 국내에 미디(컴퓨터 음악)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1인 창작이 수월해졌다는 점도 곡 쓰는 스타 가수의 등장에 일조했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90년대 들어 대중문화 소비의 주도권이 자기 스타일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큰 10∼20대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기존 성인가요가 몰락했다. 자신의 세대가 직접 만들어낸 가사와 사운드를 듣고자 하는 욕구가 컸다”고 했다. 90년대 스타 싱어송라이터 중 다수는 라디오 진행자나 대형 콘서트의 호스트로서 친근감이나 압도적 카리스마로 10∼20대와 소통했다.

미국과 영국의 팝 음악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 로드, 레이디 가가, 에드 시런처럼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10∼20대 싱어송라이터가 새로 떠올라 스타의 지위를 유지하는 예가 여전히 적잖다. 강일권 웹진 ‘리드머’ 편집장은 “외국은 대형 음반사도 록, 전자음악, 흑인음악 같은 특정장르를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음반제작에서 혼자 제작과정의 상당 부분을 해결하는 싱어송라이터를 보유하는 건 이득이다. 국내 대형 기획사 시스템에서는 자기주장과 음악관이 강한 가수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뮤지션을 바라볼 때 음악에 초점을 두는 분위기가 여전한 것도 팝 음악계에서 싱어송라이터가 대접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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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싱어송라이터 시대가 끝난 건 아니다. 싸이, 악동뮤지션, 버스커버스커가 성과를 보여줬다. 전체 가요계에서 싱어송라이터의 비중이 작아졌을 뿐이다. 김작가 평론가는 “국내에서 H.O.T. 이후 한 사람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 모험보다 수익이 중심이 되는 시장 판도가 형성되면서 아이돌을 제외한 다른 형태의 스타가 생산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고 분석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1990년대#싱어송라이터#서태지#신해철#전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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