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최형국의 무예 이야기]비상식량 몰래 먹은 병사, 무기 분실죄 수준 처벌

동아일보 입력 2013-03-08 03:00수정 2013-03-08 11:02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조선 군사들의 취사
고려시대부터 조선 선조 때까지 함경도에서 활약한 장군들의 행적을 엮은 ‘북관유적도첩’ 중 ‘출기파적도(出奇破賊圖)’. 이 그림은 관군과 반란군의 전투를 다룬 것이다. 확연히 드러나진 않지만 그림 속 병사들은 비상식량을 넣은 전대(戰帶)를 휴대해 배가 튀어나와 있다. 고려대학교박물관 제공
《 ‘보급(補給)’은 전쟁을 수행할 때 군사들의 사기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는 요소다. 보급이 불확실하면 전쟁에서 패할 확률이 높아진다. 보급 물품 중 전투식량은 특히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챙겨야 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도 엄중하게 관리됐다. 》

취사병인 ‘화병(火兵)’… 기상나팔 소리에 식사 준비

‘북관유적도첩(北關遺蹟圖帖)’ 중 ‘창의토왜도(倡義討倭圖)’ 일부분을 확대한 모습. 고려대학교박물관 제공
조선시대에는 ‘화병(火兵)’이라 불리는 군인이 있었다. 글자 그대로 보자면 불이나 화약과 관련된 병종인 조총병이나 총통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심지어 한문을 전공한 학자들조차 군사 관련 서적의 번역작업에서 이 같은 오역을 자주 할 정도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시대의 정식 병종인 화병은 오늘날로 따지면 취사병에 해당한다. 심지어 기본 패용장비 및 무기와 함께 작은 솥단지를 등에 짊어지기 때문에 한눈에 누가 취사병인지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병서에는 ‘힘이 약해 전투에 참가하기 힘든 사람을 화병으로 선정해 부대원의 식사를 책임지게 한다’고 적혀 있다.

기상나팔 소리가 요즘 군인들을 깨우듯이, 조선시대에도 나팔 소리로 병사들의 기상을 알렸다. 새벽의 첫 번째 나팔 소리인 ‘두호(頭號)’는 병사들이 침상을 정리하고 화병이 밥 지을 준비를 하라는 신호였다.

관련기사
밥을 짓기 위해 필요한 땔감과 물은 해당 부대원들이 돌아가며 준비했다. 물론 이때에도 일정한 체계에 따라 물을 긷고 땔감을 마련해야 했다. 땔감의 경우는 진영을 구축하고 막사를 완성한 후 하루 걸러 한 번씩 나무를 해왔다. 이 작업은 진영 밖으로 나가 정확하게 두 시간 안에 끝내야 했다. 땔감 하는 병사들이 진영을 출입할 때는 작업병의 수를 세는 수병(數兵)이 진영 문 앞에서 한 명씩 확인해 가며 도망병이나 세작(첩자)을 색출했다. 만약 수가 적으면 도망병이 발생한 것이고, 수가 많으면 첩자가 그 사이에 끼여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식수(食水)는 땔감보다 엄격하게 통제했다. 물은 오후 4시 단 한 차례만 길어오며, 딱 15분 동안 그 다음 날 사용할 물까지 긷도록 했다. 이는 물을 긷는 도중에는 무기 휴대가 어렵기에 병사가 적의 매복에 걸리거나 척후병에게 발각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요즘의 보급부대에 해당하는 군사들이 수레에 쌀이나 보리 같은 식량을 싣고 본대와 함께 이동해 지속적으로 공급했다. 멀리 원정을 갈 때는 그 지역에서 직접 곡식을 수확하거나 짐승을 사냥해 군사들의 배고픔을 달랬다.

전투가 시작되면 사방에서 화살과 총탄이 빗발치기에 편히 앉아서 밥을 해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과 보급이 끊어지는 경우에 대비해 병사들은 각자 며칠 동안 버틸 수 있는 전투비상식량을 직접 만들어 휴대해야 했다.

특히 전쟁 때에는 적에게 포위되거나 본대와 격리되는 비상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에 비상식량 만드는 일은 일종의 훈련 형태로 진행되곤 했다.

쌀과 밀가루로 비상식량 만들어

가장 보편적인 비상식량은 마른 곡물을 활용해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병사 각자에게 노랗게 볶은 쌀 두 되와 밀가루 한 되를 나눠준다. 병사들은 이렇게 받은 것 가운데 쌀 한 되는 맷돌로 곱게 갈아 가루를 내고 나머지 한 되는 따로 휴대한다. 그리고 밀가루 한 되(10홉) 가운데 다섯 홉은 비에 젖을 것을 대비해 향유(香油·참기름이나 들기름)를 사용해 떡을 만들어 찐다. 나머지 다섯 홉은 휴대하는 도중에 상하지 않도록 좋은 소주에 담갔다가 꺼내 말리는데,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해 밀에 소주가 완전히 흡수되도록 한 뒤 건조했다.

소주에 적셔 말린 밀 중 절반은 곱게 갈아 반죽을 한 후 휴대하기 편한 가래떡 모양으로 만들고, 나머지는 소금물과 식초에 담갔다가 말려 여름철에도 쉽게 부패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여기에다 장기전에서 체력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요소인 소금을 반드시 챙기게 했다.

이처럼 일반 식량보다 몇 배는 힘들게 만든 비상식량은 그 사용과 관련해서도 철저한 규정이 있었다. 적에게 포위돼 보급병의 접근이 어려운 전투상황이 아니면 절대 먹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비상식량을 점검하는 일이 무기 점검과 함께 수시로 이뤄지기도 했다. 만약 비상식량을 휴대하지 않았거나 먹어 버렸을 때에는 자신의 무기를 잃은 죄와 똑같은 형량으로 죄를 물었다.

비상식량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야 했는데, 조선시대에는 군사들이 허리를 동여매는 전대(戰帶)에 이를 넣고 다녔다. 그래서 조선시대 군사들의 기본 복장은 배와 옆구리가 불룩하게 튀어 나와 있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군사들이 허리를 묶는 전대는 너비가 15cm 정도에 길이가 3.5m로 긴 천을 마름질하고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바느질을 해서 신축성이 좋았다.

요즘 우리나라 군대도 마찬가지지만 군에서 복무하는 병사들은 아무리 입어도 춥고,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것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정든 고향, 소중한 가족들과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병사들에게 보급은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절실한 것이다.

종종 군수물자 중 의복이나 먹을거리와 관련한 비리나 부실 시비가 도마에 오르곤 한다. 부디 병사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보급 관련 사항은 후방에서 좀 더 따스한 마음으로 챙겨주었으면 한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역사학 박사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