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영희 감독은 영화 ‘가족의 나라’에 대해 “재일교포 북송이나 총련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르는 분들도 이것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양영희 감독(49)은 스스로를 “트리플(3중) 아웃사이더”라고 했다. 일본 사회에서 재일교포라는 점이 그렇고, 아버지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간부였지만 이념에 반대해 총련 학교에서 이단아였다. 그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에도 속하지 못했다. 오사카에서 태어난 양 감독은 총련 계열인 도쿄 조선대를 나와 미국 뉴욕 뉴스쿨대 대학원 미디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일본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가 연출한 ‘가족의 나라’가 올해 초 유력 영화전문지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2년 최고의 영화’에 뽑혔다. 1919년 창간된 키네마준보는 1924년 이 상을 제정했다. ‘가족의 나라’는 지난해 베를린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상, 파리영화제 ‘마음을 울리는 영화상’도 수상했다.
다음 달 7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양 감독을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의 한 극장에서 만났다.
“한국 이름으로 사니까 젊을 때 아르바이트 자리도 못 구하겠더라고요. 양영희란 이름을 버리면 자기 근원에 대한 존엄까지 버리는 것 같았어요. 이제야 일본에서 발붙이고 스타트 라인에 선 느낌이에요.”
영화는 1970년대 북한의 재일교포 북송사업을 통해 평양에 갔다가 병 치료를 위해 20여 년 만에 돌아온 남자와 일본에 남았던 여동생의 만남을 그렸다. 양 감독의 가족사가 작품의 바탕이 됐다. 그의 오빠 셋도 1971년 북한으로 보내졌다.
“1959년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9만4000명이 북으로 갔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두들 너무 무관심합니다. 오빠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는 전작 다큐멘터리 두 편에서도 북송문제를 다뤘다. ‘디어 평양’(2006년)에는 양 감독과 아버지의 오랜 갈등이, ‘굿바이 평양’(2009년)에는 북한 조카들의 일상이 담겼다. 그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2006년 북한 입국을 금지당했다. 그해 아버지는 뇌중풍(뇌졸중)으로, 북에 있던 큰오빠는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여섯 살 때부터 이산가족으로 살았어요. 오빠들이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죠. 아버지는 사상을 강요하진 않았지만 학교에서는 애국을 강요했어요. 애국이란 것도 느껴야 가능한 건데….” 그는 몇 해 전 한국으로 국적을 바꿨다.
1981년 고교 시절부터 2005년까지 10여 차례 북한을 다녀왔다. 오빠가 사는 아파트에 길게는 한 달 넘게 머물면서 인민들의 ‘맨얼굴’을 봤다.
“1990년대 여자는 밖에서 바지를 못 입었어요. 여자들은 일본 화장품, 청바지, 짧은 치마를 무척 동경했죠. 외국 기자가 마이크를 들이대면 ‘수령님은…’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우리와 같아요. 남자들은 술 먹으면 연애 이야기를 늘어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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