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선 대표는 “그림이나 음악처럼 음식의 맛도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샘표식품 제공
《맛있다 또는 맛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미술이나 음악으로 치면 ‘그림을 잘 그렸다’거나 ‘좋은 곡이다’ 혹은 ‘연주를 잘했다’ 같은 평가를 내리는 일이다. 하지만 맛을 평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다른 사람들이 작품이나 사진을 보고 공감할 수 있고, 음악 역시 악보나 녹음된 연주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물론 음식에도 레시피가 있다. 그러나 내가 먹은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가를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알려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한자리에서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다면 모를까, 같은 레스토랑에 가서 같은 음식을 주문하더라도 앞서 다른 사람이 평가를 내렸던 그 음식과 똑같은 것을 먹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식품사업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제품을 만들 때 어떤 맛을 내야 하는가를 말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샘플을 만들어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결과적으로 제품의 맛이 개발자의 입맛에 맞춰지는 것은 맛을 느끼는 일의 그런 특성 때문이다.》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할 때처럼 맛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면 맛을 알아야 한다. 매일 라면만 먹어도 사는 데 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인생의 즐거움, 아름다움을 느끼는 행복을 온전하게 누리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35년 전, 미국 유학시절 나는 음악의 즐거움을 알기 위해 1년 동안 매일 4시간씩 바른 자세로 앉아 클래식 음악을 들었다.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였다. 날마다 몇 시간씩 음악을 듣는 일은 ‘토가 나올’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같은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어떤 종류의 음악을 내가 좋아하는지, 어떤 연주가 좋은 연주인지 알게 됐다. 10년 전쯤부터는 음악회에 가거나, 라디오를 틀어놓고 있으면 온몸이 행복한 걸 느낀다. 클래식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된 거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나는 홍어를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뒤 비싼 음식이라는 이야기에, 어느 자리에 가건 홍어가 나오면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왜 이걸 맛있다고 하는지 알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쯤 흘러 전남 목포의 ‘금메달식당’이란 곳에 갈 기회가 생겼다. 한 사람이 가더라도 무조건 4인분 한 상이 나오는 유명한 식당이었는데 그곳에서 홍어로 만든 4가지 코스요리를 맛봤다. 그때 비로소 ‘지금까지 먹은 홍어가 다 엉터리였구나’ 하는 걸 알았다. 홍어 요리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한 끝에 제대로 된 홍어 요리를 만나 맛의 포인트를 알게 된 거다.
자녀를 키우면서 어떤 음식이건 “맛있을 때까지 먹어라”고 가르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맛을 모르는 것도 무식(無識)이다. 무식을 벗어나려면 맛을 알 때까지 먹어보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거다. 다양한 음식의 맛을 알아야 생활이 훨씬 풍부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기에 조카들도 내 집에 오면 똑같이 가르치곤 했다.
우리나라가 산업화를 추구하던 시대에는 식사는 단지 배를 채우는 일이었다.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분위기에서는 빨리, 싸게, 많이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유해성 논란과 상관없이 화학조미료(MSG)를 듬뿍 넣은 음식이 유행한 것은 그 때문이다. 짧은 시간에 배를 채우려다보니 단순하면서도 자극적인 맛을 찾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바뀌고 있다. 먹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 이들이 생겨나면서 단순한 맛 대신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진 복합적인 맛에서 재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다. 나트륨 외에 각종 무기질 성분이 들어 있는 천일염이나 설탕 대신 다양한 당(糖)에 대한 수요가 생겨난 것이 그 예다.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깊이 이해하기 힘든 한국 전통음식의 맛으로 사람들의 입맛이 돌아오기 시작한 거다.
삶이 행복하고 풍부해지려면 싸이의 신나는 음악도 좋지만 클래식이나 국악의 아름다움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한정식이나 여러 나라의 제대로 된 정찬을 즐길 줄 안다는 건 클래식 음악의 즐거움을 아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배만 채우고 보겠다는 식탐을 버려야 음식의 맛에 눈을 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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