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끼어들기, 꼬리물기, 주차독점… ‘꼴불견 운전’ 심리 알아보니

  • 동아일보

반칙해야 빨리가고 처벌도 안 받는 사회가 ‘나쁜 운전’ 부추겨

대한민국에서 운전을 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수시로 울컥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기기 때문이다. 만약 혈압과 맥박이 오르는 것을 감지하는 기계를 달고 다닌다면, 계속해서 울리는 삑삑 소리 때문에 운전 자체가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

‘O₂’가 우리나라 운전자들이 가장 분개해하는 운전 행태를 알아봤다. 다음은 지금까지 실시된 각종 연구 내용과 조사 결과를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의 박천수 박사가 종합 정리한 것이다. 박 박사는 교통안전 문제를 20여 년 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다.

○ 갈길 바쁜 사람 속을 시커멓게 태워

① 막판에 끼어들기=현재 일반 운전자들을 가장 열 받게 하는 행태. 합류도로에서 막무가내로, 특히 막판에 끼어드는 행위다. 얌체 운전의 진수라고나 할까. 이런 행위는 지난해 교통방송과 이지서베이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꼴불견 1위(31%)로 꼽혔다. 문제는 끼어들기가 접촉사고를 유발할 위험성도 상당히 크다는 것. 게다가 사고가 나면 피해 운전자는 한 번 더 울 수밖에 없다. 당신의 차가 막무가내로 끼어든 차에 옆구리를 들이받혔다고 하자. 그래도 당신의 과실 비율이 30%는 나온다.

더 가관인 것은 줄을 서 직진하던 차가 갑자기 앞으로 비집고 들어온 차의 옆구리나 뒤 범퍼를 들이받게 된 경우. 상대방 차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거나, 갑자기 속도를 높였다는 점을 증명하지 못하면 오히려 피해자가 사고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질 수도 있다.

② 방향지시등 생략 차선 변경=박 박사가 그 다음으로 꼽은 것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급변경하는 일명 ‘칼질’. 이것은 흉기만 들지 않았지 실질적이며 물리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위다. 칼질은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은 물론 다른 운전자의 보복행위를 불러 대형 사고를 유발하기도 한다.

③ 교차로 꼬리 물기=갈길 바쁜 운전자들의 속을 시커멓게 태우는 행위. 신호등에 노란불이 들어왔음에도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는 차들이 원인이다. 노란색 불은 불과 3초 정도만 들어온다. 보통 때도 노란불을 보고 출발하면 일반적인 속도로는 절대로 교차로를 통과할 수 없다. 길이 막히는 상황에서는 오죽할까. 그럼에도 가속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심정으로 그러는 걸까.

④ 묻지마 주차=좁은 골목길이나 길모퉁이에 세워놓은 차는 다른 차량의 운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마트나 아파트 주차장에 빈 공간이 있는데도 자기 혼자 편하자고 통로 가까이에 이중주차를 하는 행위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위 위험한 것은 한밤중 갓길에 불법주차를 하는 것. 실제로 몇 년 전에 갓길에 주차된 화물차를 오토바이가 들이받아 운전자가 사망하기도 했다.

⑤ 파란불이 들어왔는데도 출발 안 하기=여러 조사에서 빠지지 않고 지적되는 무개념 행위다. 보통 전화 통화나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시청 때문에 생긴다. 바로 뒤에 있는 차는 그렇다 쳐도 몇 초 차이로 신호를 놓치는 뒤쪽의 차들 생각 좀 해보시라.

한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진국에서도 꼴불견 운전에 대한 불만이 높다. 미국 ‘컨슈머 리포트’가 올해 1월 895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운전자들의 아우성이 하늘을 찔렀다. 한국에서 지적된 행태들이 모두 순위에 들어갔으나 약간 다른 점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1위에 오른 ‘운전 중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보내기’가 특이했다. 이것은 업무 처리에 e메일과 문자메시지를 많이 이용하는 미국인들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상인이 장애인 구역에 주차하는 것’이 2위(이런 차를 분개한 행인들이 부숴버리는 장면이 시트콤에 등장하기도 한다), ‘남의 차에 바싹 붙어 운전하는 것’이 3위였다. 이 밖에 미국에서는 ‘차선에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운전 중에 남이 낸 교통사고를 구경하기 위해 차를 천천히 모는 행위’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특히 미국에선 남성보다 여성이 꼴불견 운전에 대해 더 많이 분노하는 것으로 나타나 흥미로웠다.

○ 차 속에선 왜 사람이 달라지나

그렇다면 꼴불견 운전자들은 왜 그런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보이는 걸까. 이순철 충북대 교수(심리학)는 ‘익명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사람들은 차에 타고 있을 때 익명성이 강해진다는 느낌을 갖습니다. 뭔가 ‘껍질’에 싸여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선 잠재됐던 욕망과 욕구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중요한 건 이 욕망이나 욕구가 새롭게 생겨난 것이 아니란 점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시선 때문에 참고 있지만,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들이다. 결과적으로는 평상시에는 점잖던 사람도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욕을 하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끼어들기 등의 행태가 성격상 문제로 나타나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이에 대해 “후천적인 학습, 특히 사회적 모순이 나쁜 운전 습관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칙’을 해야 빨리 갈 수 있고, 그래도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나쁜 운전 습관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한편 끼어드는 차들에 대한 분노도 심리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줄을 서 직진하던 차의 운전자는 그럴 때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했다고 느껴 화를 내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 한 가지. 끼어드는 차에 유독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은 남의 권리를 인정하는 데 인색한 성격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사람도 줄에 끼어들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그것을 무시하고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우리나라 운전자들의 에티켓과 자질이 좀 더 개선될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 박사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한국의 정지선 준수율은 83%, 그중 서울은 74%에 불과했다.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의 정지선 준수율은 모두 90%대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꼴불견 운전#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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