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제나라 도성을 떠나 晝(주) 땅에 사흘간 머물다가 나간 것을 두고 제나라 사람 尹士가 비난했다. 그의 말을 전해 듣고 맹자는, 도를 실행하고자 먼 길을 와서 왕을 만나보았지만 뜻이 맞지 않아 不得已(부득이) 떠나게 되었으며, 그러면서도 왕이 혹시 마음을 바꿀까 기대하여 곧바로 주 땅을 나가지 못했노라고 했다.
夫는 발어사이다. 王不予追也는 王不追予也에서 동사와 목적어를 도치한 표현이다. 짧은 부정문에서 목적어가 대명사일 때 동사와 목적어를 도치하되 그 목적어를 부정사와 동사 사이에 둔 것이다. 浩然은 물이 흘러 멈추지 않듯이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는 모습을 나타낸다. 雖然은 ‘그렇기는 하지만’의 뜻으로, 予보다 앞에 둘 수도 있다. 舍는 버릴 捨(사)와 같다.
조정에 머물러 이념을 실천하는 것도 지조이고, 조정을 떠나 재야로 물러가는 것도 지조이다. 옛 사람은 떠나가는 지조도 존중했다. ‘周易(주역)’ ‘豫卦(예괘)’에 ‘介于石(개우석) 不終日(부종일) 貞吉(정길)’이란 말이 있다. ‘지조가 돌보다 단단한지라, 하루가 다 안 가서 떠나니 올곧고 길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때가 이르는 기미를 알고 조정의 벼슬을 그만두고 隱居(은거)하는 선비의 결단을 介石이라고 한다.
옛 사대부들은 歸意를 지녀 辭職疏(사직소)를 올리더라도 하루아침에 도성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국왕도 그 사직소를 바로 수리하지 않았다. 사대부들은 대개 세 번 이상 사직소를 올려 국왕이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직을 했다. 그런데 정조는 홍국영이 재위 3년(1779년)에 사직소를 올리자 인정전에서 홍국영을 불러 퇴직을 허락하는 교서를 즉시 내렸다. 그에 대한 믿음을 더는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사직을 즉시 허락한 것이다. 홍국영은 하직 인사를 할 때 ‘전하가 포의이실 때 사귀어 은혜가 천고에 다시 없었습니다’고 하고, ‘죄 없이 돌아가기에 기뻐서 춤을 추고 싶습니다’라고 했다. 울분이 섞인 말이다. 권력은 썩고 마는 것인가? 홍국영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 말이 진리인 듯도 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