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日 셰익스피어 연극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 “전통-현대 공존하는 한국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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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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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뭔가 배우고 흡수해 작품에 반영할 것”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11월 국내 첫 공연

“가볍게 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연출가로서 전환점을 맞아야 할 때 그에 필요한 뭔가를 배우고 흡수하기 위해 한국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첫 한국 공연이 그런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연극계 최고의 스타 연출가로 꼽히는 니나가와 유키오 씨(75·사진)가 한국을 찾았다. 올해 11월 24∼27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될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사전답사를 위해서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12일) 주변의 만류에도 예정대로 한국에 도착한 그는 창덕궁과 대학로, LG아트센터를 둘러봤다. 2박 3일의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폭발 뉴스를 접하고 “일본이 큰 위기에 빠졌는데 예술가는 현장을 지켜야 한다”며 13일 하루빨리 귀국했다.

귀국 직전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동아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한 그는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이 내 작품의 첫 해외 공연지였던 그리스와 닮아서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고졸 학력으로 1960년대까지 사회성 짙은 실험극 연출가였던 그는 1974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상업극에 뛰어들어 선풍적 인기를 얻었지만 일본 평단에선 이를 변절과 배반으로 간주해 그의 작품을 외면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그가 택한 길이 해외공연이었다.

그 첫 무대가 1983년 연극의 본고장인 그리스였다. 아테네 야외극장에서 공연한 ‘왕녀 메디아’는 남자 배우들만 기용한 파격적 연출로 유럽 전역에 초청되며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이에 힘입어 1987년 스웨덴의 잉마르 베리만, 독일의 페터 슈타인과 함께 영국 로열국립극단에 초청됐고 1999년에는 비영어권 연출가로는 최초로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와 손잡고 ‘리어왕’을 연출하며 기염을 토했다. 시각적 황홀경을 선사하는 그의 ‘눈의 연극’이 세계무대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다. 일본 평단도 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2002년 영국 커맨더 훈장을 먼저 수상한 그는 지난해 건축가 안도 다다오,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등이 받았던 일본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해외진출 전까지 저는 관객이 좋아하는 연출가 1위였지만 평론가가 싫어하는 연출가 1위이기도 했어요. 상업극에 뛰어든 것은 연극을 실험극과 상업극으로 나누는 이분법의 벽을 무너뜨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는데 금욕적인 평론가들은 그걸 참기 어려워했죠. 선입견이 없는 외국에 가서 평가를 받아보고자 한 거예요.”

그렇게 그는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과 평생 싸워 왔다. 소극장 실험극과 대극장 상업극의 이분법을 무너뜨렸고 스타 마케팅에 대한 고정관념도 허물었다. 연기 훈련을 시킬 때 ‘호랑이 조련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후지와라 다쓰야, 오구리 슌, 아오이 유 같은 아이돌 스타들이 그의 연극에 출연하기 위해 줄을 섰다.

“처음부터 ‘아이돌이니까 안돼’라는 생각도 또 다른 폭력입니다. 재능 있고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면 기회를 줘야죠. 무명배우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넥스트 시어터’라는 극단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에게서 예술가연하는 엘리트 의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소녀시대’와 ‘카라’를 아느냐는 질문에 “당연하다. 대중과 똑같은 음악을 듣는다. 연기에 재능만 있다면 그들도 언제든 환영”이라고 했다. 셰익스피어 연극에 주력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의 작품에는 객석에 앉아 있는 관객의 세계가 반영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객석에 권력자, 인텔리, 상인, 하층민이 골고루 앉아 있듯이 셰익스피어 작품에는 그 모든 계급이 등장합니다. 무대 밖의 세계가 다 들어있는 거죠. 그런 다원성이 좋아요. 엄선된 요리만 내놓는 프랑스 코스요리보다는 온갖 반찬을 내놓는 한국 밥상이 더 좋듯이.”

한국요리에 반했다는 그는 이번 방한을 계기로 7개월간 한국을 열심히 공부해 한국과 자신의 접점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클레오파트라 역으로 일본 여성극단 다카라즈카의 스타이며 자신이 재일교포 3세임을 밝힌 아란 게이를 출연시키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강조했다. 과연 한국에서의 첫 공연이 그리스에서 가진 첫 공연처럼 그의 연출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을 가져다줄지 지켜볼 일이다. 예약 문의 02-2005-0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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