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제주에 가면 유채꽃··· 바다··· 그리고 ‘고품격 실내악 선율’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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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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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 지휘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 인기

《18일 오후 9시 제주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의 한라홀.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예술 감독인 지휘자 금난새 씨(64)가 무대 위에 올랐다. “그동안 문화가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된 것 같습니다. 음악이 여러 곳에 머물렀으면 합니다. 올해로 7년째를 맞은 이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도 그런 바람에서 시작했습니다. 하루에 한 기업씩 돌아가면서 이 음악회를 주최하는데, 오늘은 포스코가 주인공이십니다.”》

이날 공연의 청중은 포스코 측 인사들과 제주신라호텔 고객 등 100여 명이었다. 피아니스트 유영욱 씨가 연주하는 드뷔시의 ‘기쁨의 섬’, 프랑스 앙상블 팀인 ‘트리오 방데레’가 들려주는 슈베르트의 ‘피아노 3중주 ♬장조 D.897’ 등이 금 씨의 해설과 함께 무대에 올려졌다. ‘카메라타 S’라는 국내 프로젝트 팀이 연주하는 보케리니의 교향곡 제6번 d단조는 악장별 주요 테마를 미리 들려줘 나중에 감상할 때 음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2005년 시작된 실내악 음악축제인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은 금 씨와 제주신라호텔의 ‘합작품’이었다. 금 씨는 평소 국내에 소규모 실내악을 감상하는 청중이 부족한 걸 아쉬워했고, 호텔 측은 겨울에 손님을 이끌 유인책이 필요했다. 양 측은 합의했다. “아름다운 제주의 신라호텔에서 겨울에 고품격 실내악 축제를 엽시다.”

19일 제주신라호텔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한 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의 유명 음악가들에게 연락해 부탁했죠.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내악을 한국에 심으러 와 달라. 그러면 내가 제주의 좋은 공기와 좋은 음식, 많지는 않지만 좋은 청중을 주겠다’고요.”

10여 명의 유명 음악가들이 기꺼이 제주에 왔다. 금 씨는 ‘기업이 꾸미는 음악회’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 등 금 씨의 제안을 받은 기업 오너들이 선뜻 참여를 했다.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은 하루에 한 기업이 돈을 대 주최하는 형태로 지금껏 7년째 열려왔다.

이 페스티벌엔 올해 8개 기업뿐 아니라 서귀포시까지 참여했다. 그래서 18일 시작된 페스티벌은 26일까지 9일 간 진행된다. 오후 6시는 각 기업이 40여 명을 초대하는 프라이빗 공연, 오후 9시는 일반 투숙객도 관람할 수 있는 공연으로 하루 2회 열린다.

금난새 씨가 제주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에서 소규모 청중에게 프랑스 앙상블 팀인 ‘트리오 방데레’의 연주를 해설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공
금난새 씨가 제주 서귀포시 제주신라호텔에서 소규모 청중에게 프랑스 앙상블 팀인 ‘트리오 방데레’의 연주를 해설과 함께 들려주고 있다.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공
19일 이 페스티벌의 주최 기업은 홈플러스였다. 오후 6시 한라홀보다 규모가 작은 공연장인 릴리홀에는 이승한 홈플러스 그룹 회장 부부를 비롯해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 송자 명지학원 이사장 부부 등이 청중으로 앉았다. 한국 사회의 쟁쟁한 오피니언 리더들이 홈플러스의 초청을 받아 제주에서 실내악을 감상한 것이다.

몇 년 전 이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SK텔레콤은 전임 장관들을 부부 동반으로 초청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도 지난해 이 페스티벌을 관람했다. 금 씨는 “지난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홍라희 여사가 리움 미술관에 각국 퍼스트레이디들을 초청해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가 연주하는 ‘작은 음악회’를 연 건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을 벤치마킹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동안 기업들이 VIP들을 초청해 주로 골프를 했잖아요. 그런데 연주자들의 숨소리마저 가까이 들리는 소규모 음악회에 초대받은 VIP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이승한 홈플러스 회장은 때에 따라 음악회 손님의 성격을 달리하면서 이 공연을 100% 즐기신답니다.”

클래식 음악계에는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처럼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폄하하는 일부 시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자 금 씨는 “음악을 잘못 배운 사람들의 시각”이라고 발끈했다. 그는 “삼성전자 등 우리 기업들이 눈부시게 성장할 동안 클래식 음악계는 국민 세금으로 이뤄진 정부 지원을 당연시하며 발전이 더뎠다는 것을 반성해야 한다”며 “청중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음악회는 어려운 라틴어 설교와 같다”고 잘라 말했다.

대중에게 인기가 높아 정치권으로부터 출마 제안도 받지 않았느냐는 질문엔 “많은 분들이 그럴 거라고 예상하지만 (제안을 받은 적은) 없다”며 “음악적 아이디어로 기업과 윈윈하고 싶지만 정치의 힘을 빌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청중이 음악으로 얼마나 행복했느냐’이다”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17일 금 씨를 ‘제주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제주도는 그가 국내외 연주회를 통해 제주를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금 씨에게 포부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제주는 아름답습니다. 유채꽃, 바다의 바람…. 하지만 문화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진 건 문화이니, 제주에 문화를 심겠습니다. 겨울에만 하던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을 봄, 가을에도 열어 세계적 문화 상품으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제주의 훌륭한 자연을 활용할 수도 있겠죠. 예를 들면 제주의 동굴에서도 음악회를 열 수 있지 않겠어요?”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을 반석 위에 올린 그는 꿈꾸는 소년처럼 여전히 왕성하게 아이디어를 반짝이고 있었다.

제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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