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만드는 문화 선진국]① 영국 예술의 동력은 기업

동아닷컴 입력 2010-06-09 03:00수정 2010-06-0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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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예술의 스폰서에서 파트너로

기업은 마케팅-이미지 제고
예 술은 양질의 콘텐츠 양산
관객은 부담없이 즐겨 행복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유니레버 시리즈’는 기업과 예술이 협력한 대표적인 사례다. 대기업 유니레버는 미술작품을 후원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창의적인 기업으로서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효과를 거두었다. 유니레버 시리즈 중 2008, 2009년 전시된 도미니크 곤살레스포에스터의 작품 ‘InstallationView’(아래). 위쪽은 컨설팅업체 액센츄어가 후원한 내셔널시어터의 연극 ‘Waves’.사진 제공 테이트모던미술관·내셔널시어터
《사회를 풍요롭게 만드는 예술의 진흥과 육성은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국가와 기업, 개인이 힘을 모아 문화 예술을 꽃 피울 때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선진국의 예술 육성 문화를 살펴보고 우리 현실과 비교하면서 개선해야 할 방향을 모색한다.》
지난달 28일 영국 런던 내셔널시어터 앞. 15일부터 공연하는 연극 ‘웰컴 투 테베(Welcome to Thebes)’의 티켓을 판매 중이었다. 평소 30파운드(약 5만4000원)가 넘던 좌석은 10파운드(약 1만8000원)로 매겨져 있었다. 환전업체 ‘트래블엑스’가 지원하는 ‘10파운드 시트(ten pound seat)’ 시즌이 시작된 것. 내셔널시어터 앞에서 만난 마이클 브루스 씨(60)는 “5년째 트래블엑스의 10파운드 시트 시즌을 이용해 공연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트래블엑스는 기업 홍보를 하고, 내셔널시어터는 티켓을 많이 팔고, 나 같은 관객은 싼 가격에 공연을 보니까 모두 행복한 거죠.”

○ 예술 활동 협력해 가치 부여받는 기업

영국은 기업의 협력을 예술 활동의 주요 동력으로 삼는다. 많은 기업이 예술단체와 협약을 맺고 공동 활동에 나선다. 조건 없는 지원이 아니다. 현대 소비자의 구매 행동이 기업의 윤리적 명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감안한 전략이다.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유니레버 시리즈’가 대표적 사례다.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가 2000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에 따라 루이즈 부르주아, 올라푸르 엘리아손 등 유명 작가들이 실험적인 미술작품을 선보였다. ‘유니레버 시리즈’는 해마다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모이면서 블록버스터 전시회가 됐다. 이 시리즈가 진행된 뒤 오피니언 리더의 4분의 3이 ‘예술을 아끼는 기업’으로 유니레버를 인지하게 됐으며, 소비자들도 ‘혁신과 창의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업’으로 인식하게 됐다. 유니레버는 2005년까지로 예정됐던 이 프로그램을 2012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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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용 소프트웨어 제작업체인 SAP는 돈마웨어하우스 극단의 연극작품 제작에 협력해 ‘예술을 사랑하는 기업’으로 명성을 얻었을 뿐 아니라, 주요 고객을 연극에 초청해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했다. 런던에서 2006년까지 열린 프루트스톡 뮤직 페스티벌을 후원한 음료회사 이노센트의 리처드 리드 마케팅 이사는 “페스티벌에 참석한 사람들이 이노센트 음료를 마시면서 멋진 브랜드로 인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한다. 내셔널시어터는 트래블엑스의 ‘10파운드 시트’뿐 아니라 컨설팅업체 액센추어, 금융회사 뱅크오브아메리카 등과 협력해 다양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기업과 이상적인 파트너가 되는 예술

영국에서 예술가와 예술단체들은 기업과의 협력으로 활동을 넓혀가는 한편 축적된 경험을 기업과 사회에 제공하는 적극적인 피드백도 내놓는다. 소호극단이 후원기업인 광고회사 TBWA/GGT와 실시하는 ‘피치 워크숍 시리즈’가 이 같은 사례다. 이 워크숍은 회사 직원들이 소호극단 단원들의 지도에 따라 연극 훈련을 하는 것으로, 홍보 활동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을 힘 있고 명쾌하게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둔다. 돈마웨어하우스 극단과 2001년부터 3년간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던 SAP는 극단으로부터 제공받은 ‘비즈니스 메시지 전달을 위한 글쓰기 훈련’이 큰 호응을 얻자 계약을 2007년까지 연장했다.

조각가 닉 데이비스는 2003년 BNP파리바은행 런던지사 직원들과 함께 조각 작품을 제작했다. 데이비스의 지휘로 직원들은 기둥 옆에 둘러앉아 청동조각 디자인 30개를 고안했고, 조각품의 주형을 함께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평소 만날 기회가 없던 부서 직원들이 얘기를 나누면서 팀워크가 생겨났다. 직원의 재능을 개발하고 기업 문화를 새롭게 고취하는 데 예술 감성과 훈련 방식을 활용한 것이다. 이처럼 영국에서 기업과 예술의 관계는 ‘스폰서십에서 파트너십으로’ 바뀌며 단단히 자리 잡고 있다.
■ ‘아츠앤드비즈니스’ 선임이사 필립 스패딩 씨

“英예술단체, 기금조성위해 조직적 마케팅”


“예술단체들은 적극적으로 기금 마련에 나서야 합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려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아츠앤드비즈니스(Arts & Business)의 필립 스패딩 씨(사진)는 예술단체들이 재원 조성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츠앤드비즈니스는 영국 내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컨설팅과 자문 역할을 담당하는 비영리 공공기관. 344개 기업과 167개 문화예술단체가 회원이며 정부 지원금과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된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혼이 발표된 날 그는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 연회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서펜타인 갤러리는 이 점에 착안해 해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있던 파티 장소에 당신을 초대한다’는 기금 조성 마케팅을 펼쳐 엄청난 수익을 올렸어요. 이렇듯 오늘날 런던의 예술단체들은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테이트모던의 경우 펀드 레이징 담당부서를 따로 두고 있으며, 40명의 직원이 개인 소액 기부부터 기업 기부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나눠서 조직적으로 관리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한국메세나협회 초청으로 2008년 서울을 방문해 ‘기업과 문화예술 교류의 뉴 패러다임’ 심포지엄에 참석했던 그는 “한국의 예술단체들은 대기업의 취향에 의지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기업과 예술이 견고한 파트너십을 이루기보다는 기업 총수의 취향과 기호에만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예술단체가 펀드 레이징을 하려면 기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기부의 결과물이 기부자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이를 설득해야 하지요. 현대 예술은 비즈니스 마인드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런던=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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