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飮食)’의 한자어 풀이는 ‘마시고 먹다’. 사람이란 너나 없다. 맛난 것에는 예외 없이 끌린다. 그중에는 몰입하는 경우도
있다. 미식(美食)이다. 그게 어느 경지에 이르면 도(道)로 승화한다. 반상(盤上)의 기도(棋道)나 녹차의 다도(茶道)같이. 도란
열락(悅樂), 곧 즐거움에 이르는 길. 입 안의 지고진미(至高珍味)를 추구하는 ‘식도락(食道樂)’은 그렇게 태어났다. 서양이라고
다를까. 식도락가를 칭하는 ‘에피큐리언(epicurean)’도 ‘쾌락이 인생 최고의 선(善)’이라고 주창한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기원전 342?∼기원전 270) 학파에서 유래했다. 그 쾌락은 말초적인 육체의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때도 마음이
어지럽지 않은 상태, ‘행복’이란 정신적 쾌락이다. 그런 에피큐리언과 도로 승화한 식도락. 어쩐지 일맥상통하는 듯하다. 그러면
21세기 식도락은 어떨까. 맛만 좇던 미식 탐식과 차별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감식(感食)의 경지로 발전했다. 존경하는
셰프(조리장)라면 지구 어디라도 찾아가 그의 음식을 대하는 뜨거운 열정 또한 특징이다. 매년 4월 싱가포르관광청(STB)이 여는
‘세계미식가대회(World Gourmet Summit)’는 그런 새 밀레니엄 식도락의 쇼케이스(진열장)다. 올해도 11일 개막해
24일까지 2주간 전 세계에서 초청된 52명의 셰프가 64개 음식 이벤트를 펼친다. 거기에는 미슐랭 가이드에 별 매김 된 스타
레스토랑(7곳)의 셰프(7명)도 포함됐다. ‘세상의 부엌, 지구촌 주방’을 꿈꾸며 ‘식도락 별천지’를 지향해온 ‘세계 음식의
수도’, 싱가포르의 올 세계미식가대회 현장을 살펴본다. 내년에는 꼭 한 번 시도해 보시기를.》
○ 미슐랭 가이드와 ‘세계 식도락 수도’를 탐내는 싱가포르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110년 역사의 여행안내서 ‘미슐랭 가이드’. 이 책의 편집자는 훌륭한 식당을 ‘별’ 매김으로 구별한다. 최고는 별 셋. ‘딴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요리(exceptional cuisine)인 만큼 맛 여행도 불사할 만한’ 식당이다. 별 둘은 ‘요리가 기막히니(excellent cooking) 일부러라도 들를 만한’ 식당이다. 별 하나는 ‘매우 훌륭한(very good)’ 식당.
그런데 식당을 대상으로 한 별 등급 평가의 번외로 어느 식당의 ‘요리’ 하나만 보고 소개하는 경우도 있다. 미쉐린 타이어의 심벌인 ‘빕 구르망(Bib Gourmand)’의 얼굴로 표식을 삼았다. 빕 구르망의 의미는 이렇다. ‘그 가격으로는 다른 데서 맛보기 힘든 음식(Good food at moderate prices)’이니 가볼 만하다는. 일정 가격(영국 28파운드, 아일랜드 40유로 이하)의 메뉴를 대상으로 선정한 만큼 누구나 관심을 가져볼 만한 식당이다.
미슐랭 가이드에 대해서는 흔히들 이런 오해를 한다. 별 매김에 서비스나 실내장식 등 식당 분위기까지 포함됐을 것이라는. 그렇지 않다. 그 기준은 명확하다. ‘요리’뿐이다. 접시에 담긴 음식만으로 판정한다. 기준도 엄격하다. 음식의 질, 맛과 향의 완성도, 요리의 개성, 가격의 적정성, 항상성(맛의 기복이 없는) 등 이 다섯 가지를 두루 충족시켜야 한다.
그걸 안다면 미슐랭 가이드 스타등급 레스토랑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다. 식당이나 그 주인이 아니라 요리사인 ‘셰프’에게 있음을. 그들이 ‘스타 셰프’라고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스타 레스토랑의 음식을 맛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식당을 직접 찾아가거나 스타 셰프를 초빙하거나. 싱가포르는 후자를 택했는데 그게 세계미식가대회다. 그래서 이제는 동양의 미식가가 뉴욕 시드니 산티아고 마드리드 런던 등지의 스타 레스토랑으로 긴 여행을 갈 필요가 없어졌다. 4월 중순 가까운 싱가포르로 가면 된다.
○ ‘별들의 제전’이 될 올 세계미식가대회
세계미식가대회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형식을 따른다. ‘커미셔너에 의한 초대전 형식의 콘테스트’라는 점에서 두 이벤트는 같다. 다른 점이라면 매번 바뀌는 비엔날레와 같이 커미셔너가 바뀌지 않는 것과 비엔날레(격년)와 달리 매년 연다는 것. 커미셔너 역은 셰프 출신 독일인 페터 크니프가 맡고 있다. 그가 세운 페터 크니프 홀딩스(마케팅회사)가 싱가포르관광청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운영한다.
올 행사의 슬로건은 ‘별들의 제전’. 초청된 모든 셰프는 싱가포르의 레스토랑과 파트너가 된다. 그렇게 2주간 초청 레스토랑에서 특별요리를 선뵈면서 동시에 세계미식가대회의 이벤트에 참가해 시그니처 디시(Signature dish·대표 요리)를 낸다.
그 별들을 보자. 미슐랭 스타 셰프만 7명이다. 스페인 엘 부이 레스토랑의 페란 아드리아(47)는 유일한 스리스타 셰프로 현재 스페인 관광홍보대사. 열일곱 살에 호텔 레스토랑의 접시닦이로 입문해, 군대 취사병을 거쳐 스물두 살에 엘 부이 요리사보조가 됐는데 1년 반 만에 수석요리사에 오른 ‘요리 천재’다.
세 명의 투스타 셰프 중 안드레아 베르톤(밀라노 ‘투르사르디 알라 스칼라’ 레스토랑)은 ADF(요리학교)를 설립한 프랑스 신세대 셰프 알랭 뒤카스(미슐랭 스리스타)와 몬테카를로의 루이 15세(레스토랑)에서 함께 일한 이탈리안 셰프다. 그는 ‘안드레아 베르톤과 함께하는 테누타 산 구이도 와인디너’(4월 21일)와 ‘안드레아 베르톤 요리 마스터클래스’(4월 22일)를 연다. 원스타 셰프도 세 명.
○ 와인 애호가를 매료시킬 와인 다이닝의 진수
와인은 세계미식가대회의 또 다른 어트랙션이다. 전 이벤트에 와인이 빠지지 않아서다. 페터 크니프는 매년 와이너리 5곳을 공식 초청한다. 와이너리는 시음행사와 더불어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추구하는 특별한 와인디너를 마련한다.
올 초청 와이너리와 그 와인을 주제로 한 다이닝 프로그램을 보자. 바인구트 에곤 뮐러 샤르초프(독일 모젤 지방)는 미슐랭 원스타 셰프 디터 카우프만의 푸아그라(거위 간) 디너에, 메종 폴 자불레 에네(프랑스 론 지방)와 테누타 산 구이도(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 사스카이야)는 투스타 셰프 미셸 로스탕과 안드레아 베르톤의 와인디너에 각각 제공된다. 각 와이너리는 코스마다 빈티지, 맛, 향이 다른 와인을 낸다. 와인과 음식의 조화를 이렇듯 극적으로 융합해낸 식도락 이벤트는 흔치 않다.
○ 식도락의 한계를 시험하는 기발한 음식 이벤트
지난 13년간 세계미식가대회의 시그니처 이벤트는 ‘구르메 사파리(Gourmet safari)’였다. 사파리라는 단어에서 풍기듯 풀코스 디너를 코스마다 다른 식당에 마련해두고 식객이 찾아다니며 맛을 보는 이벤트다. 한 해는 트롤리버스로, 한 해는 골프카트와 체어리프트로, 한 해는 강상의 보트로…. 올해는 사파리 방식을 버리고 새롭게 디자인됐다. ‘싱가포르 플라이어’라고 불리는 대관람차를 탄 채 5코스 디너(4월 13일·99달러·이하 싱가포르달러)를 즐겼다. 10년 전 센토사 섬을 오가는 곤돌라에서 즐겼던 ‘스카이 다이닝’의 2010년 버전인 셈이다.
올해는 이탈리아 음식을 주제로 한 이색 이벤트가 많았다. 셰프 미켈레 파바넬로는 ‘일곱 가지 치즈로 둘러보는 이탈리아 여행’(4월 13일·138달러)을 펼쳤다. 전식부터 후식까지 일곱 코스 디너의 모든 요리에 사르디니아 캄파니아 시칠리아 등 이탈리아 각 지방의 대표 치즈를 가미한다. ‘어머니 손맛을 찾아’(4월 16일·98달러)는 로베르토 갈레티가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을 재현하는 이탈리아 가정요리 체험행사다.
‘구르메 골프’ 체험(4월 20일·280달러)도 특별하다. 골프 라운드(18홀)를 하면서 즐기는 식도락인데 티업 전과 라운드 도중에는 카나페와 음료가, 게임 후에는 뷔페가 제공된다. ‘이탈리아:프랑스 3:3’(4월 20일·120달러)은 남아공 월드컵을 염두에 둔 이벤트. 이탈리아와 프랑스 셰프가 각각 각국 대표 요리 3개씩을 내는데 3-3은 두 나라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만났을 경우 예상한 스코어.
○ 여행정보
◇세계미식가대회 ▽기간=올해는 4월 11∼25일. 매년 4월 중순 열리는데 홈페이지에서 수개월 전 공지. ▽장소=싱가포르 시내 레스토랑(호텔 포함) 등지. ▽참가하기 △방법=홈페이지(www.worldgourmetsummit.com)에서 원하는 이벤트 티켓 구입. △티켓=씨티은행(협찬) 신용카드로 결제 시 10% 할인. △유의사항=이벤트마다 정해진 드레스코드(참가복장)를 따른다. 모든 행사는 영어로 진행.
◇싱가포르항공 스톱오버 홀리데이 ▽스톱오버’(stopover)=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한 숙박. 싱가포르항공은 싱가포르 스톱오버의 경우 특전을 주고 있는데 스톱오버 홀리데이가 그것. ▽특전=숙박비(2박까지) 할인, 공항∼호텔 버스 제공, 홉온(Hop-on·정류소에서 무제한 승하차) 버스 무료, 주요 관광지(주롱새공원 등 7곳) 무료, 야쿤(전통 토스트 식당) 커피 토스트 무료. 최하등급 호텔 숙박비는 59달러(2인 1실 1인 기준·싱가포르달러), 추가 숙박 63달러. ▽기간=4월 1일부터 1년간. ▽문의=싱가포르항공(www.singaporeair.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