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만 등장 史料, 교과서 수록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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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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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동학사’속 ‘동학 폐정12조’
새 교과서에 재게재 여부 관심

내년부터 고교생들이 기존의 국사를 대신해 배우게 될 한국사 교과서 검정 심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현행 6종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학의 폐정개혁안 12개조’가 다시 게재될지 역사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폐정개혁안 12개조는 천민 차별 철폐와 토지 평균분작(나누어 경작하는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교과서에는 대부분 동학농민군이 주창한 것으로 기록돼 있으나, 그 출처인 오지영의 ‘동학사’(1940년)가 ‘역사소설’이라는 점을 밝힌 연구 결과가 여럿 나와 있다는 게 논란의 초점이다. 오지영은 천도교인으로 ‘동학사’에서 자전적인 이야기를 쓰고 있다.

논란을 처음 제기한 유영익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는 “광복 직후 학계는 ‘동학사’가 사료적 가치가 없어 인용하지 않았지만 1950년대 북한학자 오길보가 평균분작 내용을 인용한 뒤 일본을 거쳐 다시 한국에 소개되면서 정식 사료처럼 인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에 따르면 ‘폐정개혁안 12개조’라는 이름으로 제기된 주장은 없으며 특히 ‘토지는 평균하여 분작한다’는 마지막 조항은 당시 동학농민군의 포고문이나 호소문 등 어디에도 나오지 않고 오직 역사소설 ‘동학사’에만 나와 있다.

유 교수는 “토지를 평균하여 경작한다는 주장은 사회주의적 성격이 강한, 당시로서는 굉장히 급진적인 주장”이라며 “1940년대에 저자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전북대 노용필 교수도 2001년 ‘동학사와 집강소 연구’에서 “토지 평균분작은 오지영의 개인적인 희망사항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한 번 인용되기 시작한 동학사의 폐정개혁안 12개조는 계속 교과서에 반영돼 왔다. 2004년 작고한 이기백 서강대 교수가 생전에 집필한 대학 역사 교재인 ‘한국사신론’에 인용되면서 고교 교과서에도 소개됐다. 이 교수는 2003년에 이 책의 개정판을 내면서 유 교수의 연구 결과를 받아들여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삭제했다. 그 대신 동학농민군이 전라감사에게 제시한 개혁안을 소개했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6종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는 모두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인용하고 있다. 출처를 밝히면서 ‘역사소설’이란 사실을 빠뜨린 것이 4종이나 되고 출처 자체를 표시하지 않은 것이 2종이다.

이에 대해 동학농민운동사를 전공한 박맹수 원광대 교수는 “오지영의 책이 나올 당시의 ‘소설’은 오늘날의 허구적 이야기라는 의미라기보다 자기 체험을 담은 작은 이야기라는 뜻”이라며 “폐정개혁안 12개조가 다른 사료에 없는 것은 맞지만 동학에 가담했던 저자가 동학의 정신을 정리해 만든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교의 역사 관련 교과서는 내년부터 ‘한국사’라는 이름으로 발행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7월에 검정을 통과한 한국사 교과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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