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파리의 ‘태양극장’ 같은 전용극장 짓는게 꿈”

  • Array
  • 입력 2010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극단 ‘차이무’ 만든 이상우 한예종 교수, 8년만에 무대 복귀

14년전 창단… 대학로 ‘스타 등용문’ 명성
복귀 첫 작품은 화장실 무대 사회풍자한 ‘B언소’
강신일-송강호-문소리 광고 출연료 3억 쾌척

이상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겸 극단 차이무 예술감독이 2일 무대세트 작업이 한창인 대학로 아트원 차이무극장에서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홍진환 기자
이상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겸 극단 차이무 예술감독이 2일 무대세트 작업이 한창인 대학로 아트원 차이무극장에서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홍진환 기자
지난해 연극 작품 중 최다 유료관객을 동원한 ‘늘근 도둑 이야기’의 원작자인 이상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59)가 서울 대학로에 새 둥지를 마련하고 연극판에 본격 복귀했다. 그가 1996년 창단한 극단 차이무는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3관(차이무 극장)을 임차해 극전용 극장을 마련하고 연중 공연에 들어간다. 이 교수는 이 극단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2002년 교수가 된 뒤 가르치는 재미에 빠져서 사실상 대학로를 떠나 있었죠. 차이무 전용극장을 짓자는 단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8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셈입니다.” 이 교수는 김민기 극단 학전 대표와 극단 연우무대 창단동인. ‘칠수와 만수’로 성가를 높이며 연우무대 대표를 지낸 그가 자신을 따르던 일군의 배우들과 함께 세운 극단 차이무는 소속 배우들이 영화와 방송계 스타로 속속 진출해 ‘대학로 스타 등용문’이란 소리를 들었다. 문성근 강신일 송강호 김승욱 이대연 이성민 박상원 씨 같은 남자배우와 요즘 탤런트 이선균 씨의 아내로 유명한 전혜진 씨, 영화 ‘숨’의 여주인공 박지아 씨가 모두 차이무 출신이다. 2년 전 폐암으로 숨진 박광정 씨도 핵심 단원이었다.

이번 차이무 극장 개관은 강신일 송강호 문소리 씨 등 극단 출신 배우들이 매일유업 치즈광고 출연료 전액(3억 원)을 기부해 이뤄졌다. 한 번도 공식 단원을 뽑지 않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단원이 30여 명. 문소리 씨나 이선균 씨처럼 스스로 단원을 자처하는 ‘비밀단원’까지 합치면 50여 명에 이른다는 게 이 교수의 귀띔이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 파리의 ‘태양극장’과 같은 전용극장을 지어서 좋은 작품을 연중 올리자며 약정서까지 썼는데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5∼10년 뒤를 내다보고 일단 3억 원의 종잣돈으로 극장을 임차한 뒤 공연수익금을 차근차근 모으기로 했어요. 30대 중반 이상의 단원들은 교통비만 제하고 무료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그 첫 작품이 1990년대 대학로 연극흥행 신화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연극 ‘B언소’(2월 5일∼5월 2일)다. 변소의 우회적 표현이자 유언비어가 떠도는 곳(蜚言所)이란 의미를 담은 이 작품은 네 칸짜리 변기가 있는 화장실을 무대로 27개의 에피소드가 펼쳐지는 사회풍자극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대본의 절반가량을 바꿨어요. 노무현 정부 때와 이명박 정부 때 편가르기 행태가 어쩌면 그렇게 똑 닮았느냐는 정치풍자도 담았고 비밀단원 중 하나인 어어부밴드의 장영규 씨가 작곡한 음악과 ‘굳세어라 금순아’와 한때 빨치산 출신이 작곡했다는 소문으로 금지곡이었던 ‘부용산’ 같은 노래도 넣었어요. 오늘날 풍자극이란 의미에서 제목도 ‘B언소’로 바꿨습니다.”

1990년대 초 이미 연봉 1억 원 넘게 받던 카피라이터 출신답게 재기발랄한 이 교수의 풍자극이 요즘 시대에도 통할까.

“요즘 풍자극의 전통을 이어 가는 후배를 찾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에요. 저도 반신반의하고 있어요. 하지만 차이무의 레퍼토리가 풍자극 일색은 아니에요. 민복기 현 대표가 쓰고 연출하는 ‘양덕원이야기’는 따뜻한 휴먼드라마입니다.”

그렇다면 요즘도 1년에 두세 차례씩 전체 단원이 가족동반 파티를 연다는 극단 차이무의 저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어떤 연출가는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머릿속에 그려 넣고 작품을 끌고 가고 어떤 연출가는 원하는 것을 배우가 보여줄 때까지 기다리지만 저는 배우들이 오히려 저를 끌고 가주기를 원하는 스타일이에요. 배우들에게 주문하는 것도 ‘너 혼자 하려 하지 말고 남을 도와주는 연기를 하라’는 거죠. 극단 공연이 없을 때는 ‘차이무 단원이라면 다른 극단에서 서로 모셔가려 해야 한다’면서 다음 작품 할 때까지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고 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아요.”

야구만 자율야구가 있는 게 아니었다. 자율연극, 그게 극단 차이무의 저력이었다. 02-747-101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