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수록 수 읽는 데 시간이 걸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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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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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서 홀로 분투 이창호 9단 인터뷰

최근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 진출한 이창호 9단은 이세돌 9단이 휴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우며 한국 바둑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최근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에 진출한 이창호 9단은 이세돌 9단이 휴직으로 빠진 공백을 메우며 한국 바둑의 대들보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창호 9단이 세계대회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최근 열린 LG배 4강전에서 중국 조선족 기사 박문요 5단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이달 초 열린 삼성화재배 4강전에선 유일한 한국 기사로 출전했다. 이 9단은 8월 이후 세계대회에서 7승 2패를 기록 중이다. 세계랭킹 1위를 다투던 이세돌 9단이 휴직으로 빠진 공백을 이 9단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전인 명인전에서도 18일 김승재 4단을 꺾고 결승에 올랐다.

지난해 승률 60%로 1988년 입단 이후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올 8월 물가정보배 결승에서 김지석 6단에게 패할 때만 해도 ‘내리막길’이라는 평가가 많았으나 가을 들어 완연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그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국 기사들이 중국 기사에게 밀린다는 평가가 있다고 하자 “실력에서 뒤지지는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평소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에게 보기 드문 어조였다.

“4, 5년 전 한국이 세계대회를 휩쓸 때 한국과 중국의 실력이 우승 횟수만큼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기세나 흐름에 따라 결과에 차이를 보일 뿐이죠. 최근 세계대회에 나오는 기사들은 누구도 얕볼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포석에서 중국 기사들은 계속 신형을 연구하며 실전에서 활용하는데 한국 기사들이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제한시간이 짧아지면서 포석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데 중국이 이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선 중국의 집단연구 체제가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젊은 기사들과 같이 연구하면 좋을 텐데 최근 대국이 폭주해서….”

그는 이달에만 삼성화재배 LG배 등 세계대회와 명인전 준결승, 국수전 16강, 한국바둑리그 등 9국을 소화했다. 2, 3일에 한 번씩 둔 셈. 그것도 중국 상하이와 제주도, 서울을 오가는 일정이었다.

그가 지난해 부진했을 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다. 두통이 심하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증상으로 바둑에 몰두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승률이 60%에 머물며 최악일 때와 비교하면 많이 좋아졌어요. 증상은 여전한데 아직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어요. 많이 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고 하네요. 바깥출입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고요.”

그가 최근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과거 신산(神算)으로 불리며 불패(不敗) 신화를 이어갈 때보다 못하다는 평도 있다. 최근 한국바둑리그에서 강동윤 최철한 9단에게 연패를 당했다.

“끝내기에서 정밀한 계산력이나 순발력이 떨어진 것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수를 보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는데 결과가 안 좋을 때가 있어 저도 안타깝습니다.”

그는 25일 개막한 농심 신라면배 세계연승최강전 본선에 와일드카드로 참가했다. 그는 이 대회 본선에서만 16승 2패(승률 88.89%)를 기록했고 한국 팀이 기록한 8회 우승 중 7회에 최종 주자로 나서서 마무리를 맡았다.

“한국 팀에서 신예 기사인 김지석 6단, 김승재 4단이 초반에 잘 버텨주면 우승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올해 34세인 그의 결혼 소식은 항상 관심거리다. 그는 24일 열린 농심배 전야제에서 “결혼은 내년쯤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바둑 잡지 기자와 사귀고 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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