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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2월 2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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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위원회 구성 여야에서 2명씩 추천하고 대통령이 1명 임명
예결산 국회심의 자율성 훼손 주장에 한나라 안에서도 “유보”
국책방송 처리는 아리랑TV - KTV - 국회방송 통합안 등 제기
한나라당이 추진 중인 공영방송법 초안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공영과 민영 사이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국내 지상파 방송을 ‘공영은 공영답게, 민영은 민영답게’ 정비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현재 KBS 재원(2007년 1조3963억 원) 중 수신료는 38%로 세계적 수준의 공영방송인 영국 BBC 등에 비해 턱없이 낮아 명실상부한 공영방송의 위상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EBS도 재원(2007년 1800억 원)의 75%를 광고나 학습교재, 영상물 판매로 충당하고 있다. MBC는 방송문화진흥회를 대주주로 둔 소유 구조를 근거로 공영방송을 자처하지만 재원을 100% 가까이 광고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정체성에 혼란을 빚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내 지상파 방송들이 공영과 민영 등 정체성에 따라 국가 지원과 규제의 잣대가 달라야 하는데도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따라 사장 임명 방식과 재원 등의 측면에서 자본과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을 만들어 방송의 공공성을 담보하고, ‘공영방송법’에 포함되지 않는 민영방송에 대해서는 규제 완화와 시장 경쟁력 강화를 통해 글로벌 미디어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는 요구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공영방송 재원=공영방송법 초안은 수신료와 광고의 비중을 8 대 2로 맞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KBS 재원 중 광고 비중은 47.3%, 수신료 비중은 38.3%(2007년 기준)로 공영방송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광고 의존도가 높다. BBC 지상파 방송의 수신료 비중은 99%, 일본 NHK는 97%가 넘는다. 감사원도 2004년 KBS 감사 당시 수신료 비중을 높이기 위해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공영방송법 초안처럼 수신료 비중을 80%로 맞추려면 현행 월 2500원인 수신료의 인상이 불가피하다. KBS는 수신료 인상을 추진해 왔으나 특정 이념에 편향된 프로그램과 방만 경영에 대한 지적으로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정연주 전 사장이 재직할 당시인 2007년에 수신료를 월 4000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방만 경영의 문제를 해결할 정책 등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방송가에서는 KBS가 강력한 구조조정을 전제로 해야만 수신료를 인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영방송법안에는 수신료 인상을 위한 근거와 절차, 구체적 방안 등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KBS가 수신료를 통해 공영적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 그동안 MBC, SBS와 시청률 경쟁을 벌이며 공영방송답지 않은 프로그램을 양산했던 문제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EBS는 KBS로부터 수신료의 3%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비중은 연간 예산(1800억 원)의 8%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교재·영상물 판매(65%), 광고(12%), 방송발전기금(10%)으로 충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EBS 관계자는 “공영방송으로서 수신료 비중이 최소한 50%는 돼야 한다”며 “수신료가 4000원으로 인상될 경우 15%는 지원받아야 그 선을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위원회와 사장 선임=공영방송법 초안에 따르면 KBS를 감독 관리할 경영위원회를 구성하고 이곳에서 직접 사장을 선임한다. 경영위원회는 5명으로 구성되며, 여야에서 2명씩 추천하고 1명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재 KBS 사장은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가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한나라당 미디어특위 관계자는 “공영방송 사장 임명권을 대통령에서 경영위원회로 이관하는 것은 여권으로서는 엄청난 권력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현 정권의 미디어 정책은 ‘방송 장악’이 아닌 ‘공영방송의 독립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는 공영방송법에 대해 “KBS는 국가권력에 종속시키고 MBC는 시장권력에 종속시키는 법안”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이창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경영위원회의 사장 선임은 정연주 전 사장이 제기한 대통령 해임권 유무 논란 등을 불식한다는 점에서 진일보했다”며 “하지만 경영위원회가 정파적 요소를 극복할 수 있는지는 제도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개선 등 제도 외적 요소가 함께 발전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국회의 예산 결산 심의=공영방송법 초안과 관련해 KBS가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은 예산과 결산의 국회 심의다. 현재는 결산만 국회 승인을 받고 있다. KBS 일각에선 예산까지 국회 심의를 받을 경우 편성 등 공영방송사의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내에서도 국회의 예결산 심의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 유보적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수신료를 준조세로 인정한 만큼 국회가 수신료의 사용을 감시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황근 선문대 교수는 “수신료 사용은 국회의 감독 범위 안에 들어와야 한다”며 “예산 사전 심의가 어렵다면 현행 결산 심의라도 철저히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리랑TV KTV 등 국책방송은?=공영방송법 제정 움직임과 함께 아리랑TV와 KTV 등 국책방송의 위상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해외 홍보 케이블 채널인 아리랑TV는 KBS월드 채널과 방송 대상 등이 중복되는 측면이 있어 오래전부터 통합의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KTV나 국회방송 등 국책방송도 매체를 국가가 직접 운영한다는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한나라당은 이들 방송의 통합 운영과 KBS 내에 포함시키는 공영화를 비롯해 이들 방송을 공영방송법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