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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0월 11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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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년전 다윈 방식 재현해 항해하며 탐사활동
“수집자료 인터넷 공개… 과학자들과 공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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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년 전, 출정을 앞둔 찰스 다윈의 심정이 이랬을까.
새벽잠을 설친 탓에 조금은 초췌해 보이는 얼굴에 수염도 깎지 못한 장보고호 선장 권영인 박사는 이산화탄소 측정 장비와 메탄센서 등 바닷물과 지질환경을 측정할 장비를 하나하나 살폈다. 이 장비들을 작동하기 위한 에너지원인 태양광 흡수기와 풍력발전기도 최종 점검했다. 배 구석구석에는 상하지 않도록 건조압축 포장한 군용비상식량과 즉석 비빔밥, 라면, 식수 등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9일 오전 10시. 장보고호의 돛이 활짝 펼쳐졌다. 잡티 하나 없는 아나폴리스의 아침 햇살이 장보고호의 마스트(돛대)에 부딪혀 환하게 부서졌다.
“속으로 대단한 기분이 들 줄 알았는데 막상 출항하려고 하니 설렘과 흥분보다는 차분함과 중압감이 밀려온다.” 대원이라고는 한 명밖에 없는 장보고호 탐사대 대장인 권 박사는 밝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대원 강동균 씨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성대한 환송은 없었다. 두 사람은 배웅나온 이들에게 “잘 다녀오겠다”고 다짐했다.
4만3990km를 항해하는 동안 장보고호는 바람의 힘으로 움직인다. 배에는 고성능 디젤 엔진이 달려 있지만 다윈의 탐사 방법을 똑같이 재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연구의 주제만큼은 같지 않다. 177년 전 다윈은 비글호를 타고 동식물의 생태를 살피며 진화론을 연구했지만 권 박사는 지구 온난화가 이 지역에 미친 ‘환경 변화’와 ‘바다 속 자원’이라는 현실적인 주제를 잡았다.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현장을 따라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것. 장거리 항해지만 개인 짐을 줄이고 15개의 실험장비를 실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권 박사는 “탐사를 하며 수집한 연구 자료를 모두 인터넷에 공개하겠다”고 했다. 한국에 있는 과학자들도 멀리서나마 연구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런 노력은 외국인에게도 신선하게 비쳐졌다. 장보고호를 만든 미국 선박회사 퍼포먼스 크루징 사는 국내 후원자를 잡지 못해 애태우던 권 박사의 사정을 듣자 건조비를 15% 깎아줬다. 권 박사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동해 가스 하이드레이트 탐사책임을 맡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세계적인 측정장비회사 독일 프라나테크 사의 미헬 메이슨 사장은 세계에 단 2개밖에 없는 이산화탄소 측정 장비를 공짜로 설치해줬다. 메이슨 사장은 권 박사의 탐험 주제를 듣자마자 “돈 걱정은 하지 말라”며 흔쾌히 장비 지원을 약속했다.
권 박사는 겨울방학 동안 고등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을 배에 태우고 함께 탐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연구원 시절 해양탐사에 나섰을 때도 자녀들을 동행했다. 7월 미국에서의 출항 준비를 위해 한국을 떠나기에 앞서 권 박사는 “과학과 마찬가지로 탐험이야말로 인간이 세계를 가장 꾸밈없이 바라볼 수 있는 최상의 기회”라며 “가급적 많은 어린이가 그런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박제균 영상뉴스팀장 phark@donga.com
아나폴리스=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이성환 PD zacch@donga.com
동아사이언스=박근태 기자 kunta@donga.com
영상뉴스팀=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배태호 PD newsman@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