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서 연기 이나영 “장면 장면 감정몰입에 흠뻑 빠졌죠”

  • 입력 2008년 10월 7일 03시 00분


“B급 코미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처럼 툭툭 끊어지는 느낌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나영과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 김경제 기자
“B급 코미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처럼 툭툭 끊어지는 느낌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나영과의 대화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았다. 김경제 기자
“순수한 이미지 망가지는 것 아니냐”

김기덕 영화 출연소식에 팬들 놀라

“‘비몽’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김기덕 감독의 다른 영화들을 봤나요?”

“아뇨(웃음). 신문 사진에서 본 감독님 얼굴만 알고 있었어요.”

이나영(29)이 ‘비몽’(9일 개봉)에 출연한다는 것은 이나영과 김 감독의 팬 모두에게 놀라운 소식이었다. 김 감독의 영화에는 감정을 신체학대 등 과격한 표현으로 드러내는 장면이 많다. 순수한 이미지의 이나영이 그런 영화에 어울리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이달 초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감독님 이전 작품을 안 봐서 나만 걱정을 안 한 건가”라며 웃었다.

“친한 언니들이 뉴스 봤다며 전화해서 ‘대단해…. 그런데 괜찮겠니’ 하더라고요. 저는 왜들 그러나 싶었어요. 감독님이 여성과 사랑, 인간관계의 극단적인 면을 많이 그린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죠. 그런 걸 표현하는 작업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김 감독의 15번째 영화 ‘비몽’은 사랑이 끝난 후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와 멈추지 않는 인연에 대한 얘기다. 이나영은 남자 ‘진’(오다기리 조)이 꾸는 꿈을 몽유병 상태에서 현실로 옮기는 여자 ‘란’을 연기했다. 진과 란은 이상한 인연으로 만나 서로의 상처를 헤집은 뒤 새로운 인연으로 나아간다.

“비현실적인 상황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머리로 판단하려 하지 않았어요. 장면마다 란의 감정에만 몰두했죠. 감독님은 ‘추억이 되는 기억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여러 말씀을 하셨다지만…. 저는 사랑이나 관계에 대해 ‘이래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요. 어떻게 그러고 살아요?”

―김 감독은 독특한 내용뿐 아니라 영화 빨리 찍기로도 유명한데….

“저한테는 영화가 늘 숙제죠. 배우는 영화 하나하나로 자기를 만들어가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예습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엔 딱 한 번 모여 앉아서 시나리오 쓱 읽더니 바로 촬영 들어가더라고요. 낯설었죠. 그런데 감독님은 ‘내가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영화 찍는 거 처음이다. 두 주연배우 배려한 거다’라고 하시던데요(웃음).”

김 감독의 전작에는 여배우의 과감한 신체 노출이 종종 있었다. 이나영의 캐스팅이 화제가 됐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비몽’에서 이나영은 도발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노출은 물론 과격한 대사도 별로 없다. 조각칼로 허벅지를 파내고 망치로 발등을 찍는 ‘김기덕스러운’ 장면은 오다기리 조의 몫이다.

“영화 중반 갈대숲에서 배우 네 사람이 말다툼 벌이는 신은 원래 시나리오에서 표현이 더 강했어요. 몸으로 막 치고받는 거였는데 제 소속사에서 감독님한테 얘기를 좀 했죠. 오다리기 조에 비해 너무 인형처럼 가만히 있는 것 같아서 ‘판타지 장면인데 괜찮지 않겠느냐’ 했지만 이미지를 고려해 수위 조절이 된 부분이에요.”

―아쉽지 않나요.

“어… 살짝요(웃음). 더 갈 수 있었는데 멈칫한 듯한 느낌이 있어요.”

TV 광고에서 활짝 웃는 이나영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별로 웃지 않는다. 인기를 안겨준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2002년)와 ‘아일랜드’(2004년), 2006년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그는 언제나 삶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힘겹게 살아가는 인물로 나왔다. ‘비몽’의 란도 옛사랑의 상처에 고통 받는 캐릭터다.

“원래 무거운 얘기를 좋아해요. ‘비몽’ 시나리오 정말 재미있게 읽었는데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네 속내 다 내보이면 사람들이 너무 무겁게 볼 거다’라고 걱정하더라고요. 하지만 심각하게 ‘어떤 배우가 돼야겠다, 어떤 연기를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살지는 못해요.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나 저 자신에게나 제가 느끼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느끼하지 않게? 알 듯 말 듯하네요.

“그렇게 알 듯 말 듯한 게 좋은 거예요(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이별 앞둔 연인들 갈대밭서 말다툼… “나도 저랬었지”▼

이나영은 영화 중반 갈대밭에서 오다기리 조, 박지아, 김태현 등 다른 배우들과 교대로 말다툼하는 장면을 ‘비몽’의 클라이맥스로 꼽았다. 그는 “이별하는 연인들이 서로의 마음을 후벼 파며 원망하는 모습을 연기하면서 ‘나도 저랬었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시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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