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주영의 그림 읽기]신발이 사라지면 어쩌지?

  • 입력 2008년 9월 6일 02시 58분


걱정 많은 아이가 살았습니다. 아이가 가진 걱정거리는 매우 다채롭고 광범위하였습니다. 자신의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자연현상이 아이에겐 걱정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로 날아가는 여객기가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한다면 그때 겪어야 할 치명적인 재앙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뿐만 아닙니다.

하늘에 떠가는 구름의 주성분인 수증기의 무게 때문에 지상으로 내려 꽂힌다면 그때 치러야 할 홍수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홍수로 말미암아 자신이 사는 집이 몽땅 물에 잠겨 버린다면 애꿎은 재앙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구름이 천장을 뚫고 내려와 누워 있는 자신의 코앞에서 오락가락한다면 방 안은 온통 습기로 가득 차서 자신은 조만간 병에 걸리게 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날 문득 전국에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시가지를 암흑세계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 아득한 절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벽에 걸어둔 모자가 잠든 사이에 어른의 머리에도 맞지 않을 만큼 사이즈가 커져 버린다면 그땐 어떻게 할까. 침대 아래에 벗어둔 여러 켤레의 신발에 마법이 걸려 창문턱을 넘어 숲 속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린다면, 내일 가기로 약속한 친구의 생일잔치에는 아마도 참석할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걱정거리는 늘어만 갔고, 현실로 다가올 것 같은 걱정도 많아졌습니다. 문 밖으로 나갔다가는 땅이 무너지고 그 위에 깐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변고가 일어나 온 도시가 폐허로 변하는 대재앙이 닥칠지 몰랐습니다. 도시의 변두리를 감싸고 흐르는 강물 줄기가 갑자기 시가지로 방향을 틀며 짐승처럼 뛰어올라 도시를 덮칠 수 있었습니다.

아이는 누웠던 침대에서 유령처럼 일어나 창문을 꼭꼭 닫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이불을 덮고 누웠습니다. 모든 걱정거리로부터 격리되면서 조금은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는 자세가 자신이 예상하는 모든 변고와 재앙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최상의 선택임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 있기로 결심한 이후 문밖에서는 부모를 비롯해 일가친척까지 몰려와 영문을 알 수 없는 칩거를 설득하고 만류하려 하였으나 아이는 결코 침대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침대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이 흐른 뒤, 아이로부터 생명이 물러간 뒤였습니다.

김주영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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