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아호는 ‘옹기’

  • 입력 2008년 9월 5일 03시 00분


‘옹기장학회’ 행사서 밝혀져

옹기장수 부친 영향 받은듯

김수환(사진) 추기경의 호(號)가 ‘옹기’라는 사실이 처음 공개됐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 주교좌본당 박신언 몬시뇰은 최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추기경 집무실에서 열린 옹기장학금 전달식에서 “2002년 3월 김 추기경님을 찾아 ‘스테파노(추기경 세례명) 장학회’ 설립을 건의하자 사재로 지원해주셨다”며 “하지만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장학회 이름을 옹기라고 손수 지어줬는데 추기경 아호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밝혔다.

박 몬시뇰은 또 김 추기경이 “옹기는 가톨릭이 박해받던 시대에 선조들이 산속에서 구운 뒤 내다팔아 생계를 잇고 복음을 전파한 수단이자 좋은 것과 나쁜 것, 심지어 오물까지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며 장학회 이름을 제안했다고 전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측근 일부가 추기경의 호를 알고 있었으나 추기경이 사용하지 않아 공공연하게 부르지 못했다고 전했다.

옹기라는 호는 김 추기경의 부모가 옹기 장사를 한 데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김 추기경의 할아버지가 1868년 순교한 뒤 추기경의 아버지(김영석 요셉)는 옹기장수로 생계를 꾸려가면서도 독실한 신앙을 이어갔다. 추기경의 어머니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옹기를 팔거나 포목 행상을 하며 자식을 키웠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인 허영엽 신부는 “가톨릭 역사를 돌아보면 당시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옹기를 굽거나 내다파는 교우가 많았다”며 “추기경께서는 유난히 옹기에 얽힌 추억과 경험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박 몬시뇰은 추기경이 혜화동 집무실에서 장학금을 전달할 때마다 “주님 말씀을 질그릇에 담아 전하는 북방 선교 시대의 일꾼이 돼라”는 당부를 빼놓지 않았다고 말했다.

옹기장학회는 2002년부터 12차례에 걸쳐 모두 87명에게 1억80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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