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의 감성노트]문명의 코드 뽑고…순수의 촛불 켜다

  • 입력 2008년 6월 27일 08시 15분


2008 캔들나이트 하지 콘서트

여성 환경 연대, 플러그를 뽑고 한 박자 천천히 !

남산에서 열린 한 공연에 게스트로 나섰다. 6월 21일 열린 ‘2008 캔들 나이트 하지 콘서트’라는 제목의 이벤트였다. 남산은 마치 먼 옛날의 추억처럼 수많은 나무들이 바람에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름다워 핸드폰을 꺼내 들고 그 나무들의 춤사위를 레코딩했다. 항상 하는 공연에서 그렇게 시간을 때우며 출연 순서를 기다리는 것에는 익숙하다. 하지만 이상한 건 여느 다른 행사와는 달리 슬로 라이프와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를 이야기하는 이 행사는 왠지 모를 깊은 설득력이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행사가 마음깊이 와 닿지 않았던 기억이 나는데 사람들이 모여 주위의 전기를 다 끄고 촛불을 켜든 이 자발적 이벤트는 왠지 근래의 촛불 문화제와 겹쳐 보이면서 여러 가지를 묵상하게 하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이 행사에 참여하기 전 환경 재앙을 그린 ‘투모로우’라는 영화를 봤다. 중국의 대지진, 광우병, 대운하 문제까지 이 모든 것이 거시적으로 보면 환경 재앙이고 환경 문제일지도 모른다고 조용히 생각했던 나는 뼛속 깊이 이 행사의 메시지에 동화되고 말았다.

환경 문제가 21세기에는 정말 중요한 화두라고들 한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 속의 화두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뉴스와 일상 속으로도 그 심각함이 침투해 들어와 있다. 아마도 내년, 후년에는 더욱 그 의미가 커지고 점점 중요한 문제가 되어 갈 것이다.

한 달에 하루는 / 숨 가쁜 삶의 플러그를 뽑고 / 어둠의 물결을 지피려 합니다.

촛불이 켜지면 / 우리의 숨은 느려지고, 생각이 충만해지며 / 에너지, 평화, 그리고 지구 반대편의 이웃을 / 떠올리게 됩니다.

어머니 몸속에서 느꼈던 / 고요와 느림을 닮을 수 있도록 / 한 달에 한번, / 느림의 촛불을 밝혀 주세요.

-‘캔들 나이트 콘서트’중 내레이션

서울 타워와 도쿄 타워에서 동시에 소등을 하고 느리게 사는 무욕의 연습을 시작한 이 캔들 나이트 콘서트는 아마도 조용히 전 세계로 퍼져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껏 여성은 자연처럼 조용히 세상을 위해 희생하고 침묵하며 지금의 문명세계를 일구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그 문명세계가 끝없는 욕심으로 여성과 자연을 심각하게 피폐하게 만들고 생명을 위협하는 것에까지 침묵하는 것은 더 이상 여성의, 시민의, 자연의, 아시아의 미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재활용 초롱을 만들고 달팽이로 퍼포먼스를 하며 환경 영화를 상영하고 가족과 연인이 모여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이 시간은 말로 하는 어떤 웅변보다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예술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던 점도, 남산의 나무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들과 함께 스모그로 흐려진 서울 하늘의 아픔을 매만질 때도, 모든 것이 다 참으로 절묘하게 하나의 의미가 되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 행사를 주최한 여성 환경연대를 칭찬하고 싶어졌다.

추신> ‘온난화로 인한 멸망을 대비하는 수상도시’라는 인터넷 기사를 읽고 한참을 아연실색하다 결국 서양인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생각이란 이런 우스운 한계가 있구나 하며 한국의 여성 환경연대가 제안한 이 행사가 얼마나 수준 높은 것이었는지 다시 한번 절감한다. www.ecofem.or.kr에서 많은 공감을 얻으시길 바란다.

이 상 은

글, 그림, 여행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자신의 창조력을 발휘하는 가수. 보헤미

안의 영혼으로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사진제공=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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