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황제의 비자금’ 50만 마르크

  • 입력 2008년 6월 27일 03시 12분


고종, 100년전 獨은행에 100만마르크 맡겨

獨외교부, 日帝에 액수 속여 절반만 내줘

나머지 행방 묘연… 은행에 아직 있을 수도


《고종(사진)이 1903∼1906년 독일 은행에 맡긴 비자금이 지금까지 알려진 50여만 마르크보다 두 배 많은 100만 마르크(재정경제부 추정 현재 가치 500억 원)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고종의 ‘독일 비자금’ 50여만 마르크는 1908년 일제가 전액 빼앗은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이번에 비자금 규모가 새로 밝혀짐에 따라 나머지 250여억 원에 이르는 비자금의 행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상수 명지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 소장 한국 관련 외교 문서의 복사본(국사편찬위원회 소장)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알 수 있는 보고서와 편지 10여 건을 확인했다고 26일 밝혔다. ▽고종의 비자금=고종은 1903년 중국 상하이 덕화(德華·독일-아시아은행)은행을 통해 독일 베를린에 있는 디스콘토 게젤샤프트(훗날 도이체은행에 병합)은행에 거액의 내탕금(황실 재산)을 비자금으로 맡겼다.

고종의 비자금을 찾던 일제는 독일 정부로부터 비자금 액수가 51만8800마르크라고 확인받았다. 일제는 1908년 이 금액에 해당하는 24만9776엔을 두 차례에 걸쳐 인출해 압수했다.

그러나 정 교수가 발견한 주한 독일공사 콘라드 폰 잘데른의 친필 보고서에 따르면 이 금액은 독일이 일본에 거짓으로 확인해준 것이다. 잘데른 공사는 고종의 ‘독일 비자금’을 관리했다.

“1903년 말 황제(고종)가 내게 사람을 보내 독일에 돈을 맡기고 싶다고 했다…거액을 독일에 예치했는데…독일로 보낸 돈이 100만 마르크가 넘었다…그 돈의 절반을 (일본에 보내지 말고) 확보했으면 한다. 그 돈을 황제가 보내는 정당한 사절에게 주기를 한국인들도 원할 것이다”(1907년 2월 5일 잘데른이 뮐베르크 당시 독일 외교부 차관에게 제출한 보고서).

그로부터 9일 뒤인 2월 14일 독일 외교부 관리가 잘데른에게 보낸 편지에는 “뮐베르크가 이에 동의하며 잘데른의 후임인 나이 영사가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독일 정부가 일본에 비자금 관련 액수를 속인 셈이다.

잘데른은 왜 그런 제안을 했을까. 잘데른은 고종이 어려운 처지에 있음을 설명한 뒤 “나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최선을 다해 고종을 돕겠다고 말했다…나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독일 정부의 지시를 하달 받았지만 순수하게 인간적 측면에서 고종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1903년 잘데른이 뷜로 독일 총리에게 보낸 보고서).

▽비자금의 행방=‘대한제국 정치사 연구’(서울대출판부)에서 고종의 비자금을 추적한 서영희(한국근대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1909년 고종이 호머 헐버트(1863∼1949) 박사를 통해 비자금을 찾으려 했지만 독일 은행 측은 이미 예금이 인출된 상태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일제는 51만8800마르크만 압수했을 뿐 이후 예금을 인출한 기록이 없다. 그러면 일제가 압수하지 못한 나머지 50만 마르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정 교수는 “당시 은행 측은 미국인인 헐버트 박사를 한국의 ‘정당한 사절’이 아니라고 판단해 인출을 거부하기 위해 그렇게 답했을 수 있다”며 “1910년 한일강제합방 조약이 발표된 후에는 고종도 사실상 인출이 어려웠을 것이므로 ‘대한제국 국고 유가증권’이란 이름으로 예치된 계좌에 여전히 비자금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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