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6년 美윈프리쇼 첫 방송

  • 입력 2006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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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가난. 흑인 여성. 한때 100kg의 뚱보. 9세에 성폭행당함, 그것도 사촌 오빠에게. 14세에 미혼모(2주 후 아기 사망). 마약 복용 전과자.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 이렇게 나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1954∼)의 이력이다.

그랬던 그의 지금 모습은 이렇다.

재산 10억 달러(약 9500억 원). 방송 제작과 출판 사업을 하는 하포엔터테인먼트그룹 대표. ‘20세기의 인물’(타임). ‘최고의 비즈니스 우먼’(포천). ‘세계 10대 여성’(인콰이어러). ‘존경하는 인물 3위’(월스트리트저널). ‘올해의 세계 지도자’(유엔)….

대학 졸업 후 지방 방송국 뉴스 앵커를 하던 윈프리는 시카고의 한 방송국에서 30분짜리 아침 프로그램인 ‘AM 시카고’를 맡으면서 토크쇼 진행자로 처음 나섰다.

바닥에 머물던 시청률은 윈프리가 첫 방송을 한 1984년 1월 2일부터 수직상승했다.

그의 인기가 치솟자 방송국은 1986년 9월 8일 부랴부랴 프로그램 이름을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꾸고 시간도 1시간으로 늘린다. 이때부터 방송 대상도 로컬에서 전국으로 바뀐다.

명사(名士)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진솔한 목소리를 듣는 토크쇼였다. 첫 방송의 주제는 ‘어울리는 사람과 결혼하기’.

‘오프라 윈프리 쇼’만큼 처음부터 인기를 끌고, 그 인기를 오래 유지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드물다. 5년 뒤인 2011년까지 계약이 돼 있을 정도다.

인기 비결은 뭘까. 타임은 이렇게 적었다.

“백인 남성 진행자가 지배하는 시장에서 흑인 여성인 오프라 윈프리의 토크쇼가 성공할 것으로 본 사람은 드물었다. 저널리스트다운 치열함은 없지만 쉬운 말로 호기심을 풀어 간다. 유머가 있고 동정이 넘친다. 출연자가 슬픈 사연을 털어놓으면 진행자는 눈물을 흘린다. 출연자들은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얘기까지 카메라 앞에서 털어놓게 된다. 토크쇼가 ‘집단 세러피(therapy·치료)’로 바뀐다고 할까….”

정작 윈프리 자신이 말한 성공 비결은 단순하다.

“과거에 머물러서, 그 과거가 지금 당신을 지배하게 놔둔다면 결코 성장할 수 없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지닌 장점들이 있다. 다만 그것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을 뿐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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