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54년 창경궁 동식물원 재개장

  • 입력 2006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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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전쟁은 죄 없는 동물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동물원이었던 창경원(지금의 창경궁)에 살던 동물들은 일제 말기와 6·25전쟁을 거치는 동안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했다.

태평양전쟁의 패색이 짙어 가던 1943년부터 일제는 미군의 폭격에 대비해 사람을 해칠 우려가 있는 창경원의 호랑이 곰 코끼리 악어 독수리 등 맹수 150여 마리를 독살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 철제 우리까지 다 뜯어냈던 일제는 무고한 동물들마저 희생시킨 것이다. 그리고 6·25전쟁을 거친 뒤 창경원에는 실로 작은 멧새 한 마리 남지 않았다.

“3월에 서울이 재탈환되자 나는 우선 창경원에 와 보았다. 큰물새 우리에는 재두루미 한 마리, 맹금사의 부엉이가 혹한에 굶어 죽어 있었다. 소동물사의 여우 너구리 오소리 삵 등은 혹은 굴속에서, 혹은 돌 틈에 끼어 죽어 있었다.”(오창영 ‘한국동물원 80년사’)

그러나 폐허 속에도 무심한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었다. 남은 우리에는 일선 장병들이 잡아 보낸 곰 산양 노루 삵 등이 들어와 살게 되었다. 전후(戰後) 시민들은 허전한 마음을 달래 보려고 창경원에 모여들었다. 이 광경을 보고 1954년 전택보 천우사 사장과 윤우경 구황실재산사무총국장이 주도해 동식물원재건위원회가 발족됐고, 같은 해 7월 15일 창경원의 동식물원이 다시 일반에 공개됐다.

창경궁은 일제의 강제합방 이후 수많은 전각과 문루가 파괴됐으며 1909년(융희 3년)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돼 창경원으로 전락했다. 이것은 대한제국의 국권과 황실의 권위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흉계였다. 일본인들은 벚꽃놀이가 시작되면 자기네 풍습대로 기녀들을 대동하고 휘황찬란하게 불 밝힌 벚나무 밑에 술자리를 벌이고 음란한 가무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광복 후에도 창경원은 오랫동안 무심한 놀이터로 사용됐다. 왕이 친경(親耕)하던 논을 파서 만든 인공 연못 춘당지에서 사람들은 여름엔 뱃놀이, 겨울엔 스케이트를 즐겼다.

1986년 서울대공원이 개장해 동물원이 이전됨에 따라 창경원은 75년 영욕의 역사를 마감했다. 일제가 심은 벚나무는 대부분 여의도 윤중로로 옮겨졌다. 궁궐에서 열리던 벚꽃놀이가 이제는 국민의 대표들이 모인 국회 앞마당에서 열린다. 어딘지 모르게 아이러니하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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