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전 한 소년이 본 ‘괴물’… 이제 모두가 본다

  • 입력 2006년 7월 6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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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때 아파트 창밖 한강변 다리를 기어오르는 괴물을 보았다”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 그는 “입시 강박에 따른 환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19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무형의 아이디어를 영화라는 유형의 결과물로 탄생시킨 저력이 놀랍다. 안철민 기자
“고3 때 아파트 창밖 한강변 다리를 기어오르는 괴물을 보았다”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 그는 “입시 강박에 따른 환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지만 19년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 있던 무형의 아이디어를 영화라는 유형의 결과물로 탄생시킨 저력이 놀랍다. 안철민 기자
“칸영화제 이어 국내 시사회서도 갈채

우리 관객들은 어떻게 볼지 조마조마”

《시사가 끝나고 객석에서 큰 박수가 터지기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외화내빈’이라는 지적 속에 완성도 높은 한국영화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영화계가 모처럼 ‘괴물’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시사회가 열린 4일 오후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는 5개관 2000석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계단까지 채웠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시사가 끝난 다음 날인 5일 오전 그를 인사동에서 만났다.

전후로 여러 매체의 인터뷰 약속이 줄을 잇고 있었다.》

기자들도 열광… ‘괴물’ 대박 예고

―한국 영화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평가다. 기분이 어떤가.

“일단 안도의 한숨이 나오지만 걱정이 많다. 칸에서부터 분위기가 뜬 게 독이 될지 약이 될지 잘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대중 아닌가. 불안하다.”

―9주 연속 할리우드 영화들이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도 높은 ‘괴물’의 등장은 반갑다.

“내 인생이 참 이상하다. 2003년 ‘살인의 추억’ 때도 조폭 코미디 일색 영화판에 진정 작품성 강한 영화가 나와야 한다는 강박이 지배적이었다. 마치 9회말 구원투수처럼 등판했던 기분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늘 주목받아 좋겠다고? 절대 아니다. 나는 트렌드나 시류에 상관없이 영화를 해왔다. ‘괴물’만 해도 구상하는 데만 19년 걸렸다. 작품 그 자체로 평가받고 싶은데 작품 외적인 요소가 자꾸 개입되는 게 솔직히 불안하다.”

‘행복하다, 감사하다’는 말을 기대했던 그에게서 ‘불안’이라는 말은 의외였다. 그렇지만, 차츰 대화가 진행될수록 불안은 그에게 삶의, 혹은 영화의 원동력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나는 타인들과 쉽게 소통할 수 없었다. 외로움을 느낀 적이 많았다. 결국 내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생각해 보라, 한강변에서 괴물을 보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사람이 과연 정상이겠는가.(웃음) 영화는 다행히 나의 비정상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소통의 도구였다. 나는 영화로 도피했고 영화로 해방되었다. 그래서 영원히 영화를 하고 싶다.”

연세대 사회학과 88학번 봉 감독은 이제 막 대학생티를 벗은 어린 청년 같은 순진한 얼굴이었지만 안경 너머 눈빛은 매서웠다. 늘 고분고분하지만 빈틈만 보이면 자기 멋대로 하려 드는 악동적 이미지가 강했다. 그의 표정에는 선과 악, 불안과 행복, 집착과 자유 같은 이질적인 개념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마치 그의 영화처럼.

―‘살인의 추억’에서도 그랬지만 ‘괴물’에서도 사람이나 상황을 보는 눈이 경계 없이 넘나든다. 그런 의외성이 유머와 페이소스를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어릴 때부터 내가 좀 이상했다.(웃음) 남들이 이 A와 저 B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할 때, 나는 무심하게 때로 용감하게 둘이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생각하곤 했다.”

―어떻든, 괴물의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한국 영화의 컴퓨터 그래픽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는 평가다.

“장희철 씨라는 뛰어난 아티스트가 괴물 디자인을 맡았다. 디자인 완성까지 꼬박 1년 걸렸다. 최종적으로 한 마리를 선택하기까지 1500마리가 탈락했다. 대낮에 한강을 돌아다녀야 하니까 코끼리 정도 크기가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사람을 먹고 뱉어야 하니 입의 디테일에 집중했다. ‘반지의 제왕’, ‘쥐라기 공원’을 했던 미국 스태프도 ‘괴물 영화 많이 했지만 이렇게 섬세한 입 모양은 처음 봤다’고 할 정도였다.”

봉 감독은 ‘괴물’을 찍으며 너무 고생을 해서 다시는 이런 영화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실사영화와 그래픽 영화 2편을 고스란히 찍은 셈이었다면서 말이다.

그의 말처럼, 그의 머릿속엔 이미 ‘괴물’이 떠나 있었다.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작품에 대한 구상으로 바빠 보였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 27일 개봉 ‘괴물’은…

제작비 110억 들인 한국판 SF

탄탄한 구성 - 생생한 CG 압권

순 제작비만 110억 원이 투입된, 장르적으로는 처음 시도되는 한국판 SF 영화 ‘괴물’은 우선 재미있다. ‘괴물’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한국 영화의 기술력에 대한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는 생생하며 이미지와 내러티브의 조화도 자연스럽다.

완급을 적절하게 조절하며 곳곳에 상징과 은유를 깔아놓고 유연하게 인물들의 감정을 요리하는 봉 감독의 연출력이 이번에도 돋보인다.

영화 속 괴물은 독극물로 탄생한 일종의 돌연변이 민물고기. 2006년 평화로운 어느 날, 한강 둔치에 갑자기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으면서 도시를 아비규환으로 만든다. 한강변에서 매점을 경영하는 소시민 박강두(송강호)의 중학생 딸 현서도 괴물에 납치된다.

현서의 가족들은 현서가 죽은 줄로만 알고 합동 분향소에 있다가 ‘구해 달라’는 현서의 전화를 받고 경찰과 병원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오히려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는다. 결국 박강두와 그의 아버지(변희봉), 남동생(박해일), 여동생(배두나)이 현서 구출에 나서는데…. 27일 개봉, 12세 이상.

기자들도 열광… ‘괴물’ 대박 예고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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