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 ]1915년 헤이그 국제여성의회 개최

  • 입력 2006년 4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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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깊은 슬픔을 안고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1915년 4월 28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국제여성의회(International Congress of Women)가 열렸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영국과 독일, 미국, 헝가리, 벨기에 등 12개국 1200명의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네덜란드 대표 알레타 야콥스가 연설했다.

“성인으로서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기도 전에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마음으로부터 애도합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를, 남편을 잃은 젊은 부인을,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을 깊이 애도합니다. 20세기 현대 문명의 시대에,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데 전쟁이라는 야만적인 방식이 횡행한다는 것을 묵과할 수 없습니다.”

이후 사흘 동안 여성들은 머리를 맞대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다. 국가 간 갈등이 빚어질 때 무기를 들도록 방관하는 게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모인 사람 중 유명한 여성 운동가들이 눈에 띈다. 개회 연설을 한 야콥스는 네덜란드 여성 최초로 대학을 다녔고 최초로 의사가 됐으며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산아제한 클리닉을 개설한 인물이다. 미국 대표 중 2명은 후에 노벨평화상을 타게 된다. 시카고 슬럼가에 사회사업관 헐하우스를 설립하는 등 아동과 여성의 복지 향상에 앞장선 제인 애덤스(1931년 수상),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다가 웰즐리대 교수직에서 해임된 에밀리 그린 볼치(1946년 수상)가 그들이다.

행사가 열리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여성들은 참전국으로서의 애국심을 호소하던 정부의 반대로 참가할 수 없었다. 교전국인 러시아, 세르비아,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을 탐탁지 않아 했던 영국 정부는 네덜란드로 가는 배의 운항 시간을 늦추기까지 했다. 어렵게 모인 만큼 의미 있는 자리였다.

역사가 국제여성의회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현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을 막을 수 없었다. 그러나 국제여성의회는 여성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이날 모임이 지금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국제여성자유평화연합(WILPF)의 기초가 되었기 때문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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