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브루클린 풍자극…우연한 만남서 찾은 필연의 행복

입력 2005-12-10 02:54수정 2009-10-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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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초상화
◇브루클린 풍자극/폴 오스터 지음·황보석 옮김/400쪽·9500원·열린책들

올해 폴 오스터의 나이와 같은 쉰아홉 살의 네이선 글래스. 아내와는 이혼하고 딸과는 절연하고 폐암 치료를 받고 있는데, 헐떡거리며 일해 왔던 보험회사에서마저 자리를 잃는다. 이 소설의 머리에 영국 시 ‘궁정이여 잘 있어라’가 나오는 이유다. “믿지 못할 꿈처럼 나의 기쁨은 막을 내렸고/내 좋았던 시절은 모두 과거로 돌아갔다네”로 시작하는.

그가 찾은 곳은 결국 그가 자란 뉴욕의 브루클린. 프로스펙트 공원이 있고, 비디오방과 오래 된 레스토랑, 그리고 추억이 서린 곳. 작가인 오스터가 사는 곳이기도 하다.

뜻밖에도 네이선은 거기서 새로운 기쁨과 조우한다. 오래전 소식이 끊겼던 조카 톰을 헌책방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 나가고, 포르노 모델을 하면서 멀어졌던 조카딸, 아름다운 보석 디자이너와 연이어 만나면서 서서히 생이 바뀐다.

오스터는 브루클린을 여러 번 무대로 삼아 왔다. ‘뉴욕 3부작’ ‘신탁의 밤’ ‘환상의 책’을 비롯해 영화로 만들어진 ‘스모크’ 같은 작품에서다. 그러나 브루클린은 이번 작품에서 가장 생생한 표정으로 다뤄졌으며, 가장 주요한 역할을 한다. 나이 든 연금 수령자, 흰 옷 입은 인도인, 식료품점을 하는 한국인, 지하 셋방 생활자, 거리를 쏘다니는 개들, 그들에게 공평하게 울리는 교회 종소리…. 좀 더 깊숙하게는 ‘골수 민주당원들의 본거지’인 뉴욕의 정경이 나온다.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앨버트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대통령 선거 풍경을 그리면서 그렇다.

오스터는 영화적인 장면 제시와 감정선을 다루는 데 능란한데, 이번 소설도 결말로 갈수록 그렇다. 네이선은 결국 인생의 많은 족쇄로부터 풀려나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데 어느 이른 아침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채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행복이라는 걸 실감한다. 하지만 곧이어 뉴요커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그의 머리 위를 날아간다. 납치된 여객기가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향해.

미국 현대 문학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오스터의 작품 가운데 특히 인간애가 넘치는 소설, 대도시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들의 희로애락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다. 원제 ‘The Brooklyn Follies’(2005년).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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