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내가 찍었어!… 남자에서 여자로 연애주도권 이동

  • 입력 2005년 12월 3일 03시 00분


코멘트

《#1 “너 찍었어.”

휴대전화 TV광고에서 탤런트 김태희(25)는 혼혈 배우 다니엘 헤니(26)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찍어!”라고 외친다. 손가락으로 찍는다는 의미와 “내가 너 찍었다(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겹쳐진 것. 후속 CF에서 김태희는 연하의 남자에게 “더 이상 누나라고 하지마”라고 외친다.

#2 “나 마음에 들어요?”

11월 한 달간 7번 소개팅을 했다는 대학원생 황모(24·여) 씨. 첫 느낌에도 남자 친구가 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그는 “마음에 들면 길게 끄는 것보다 ‘저 어때요?’나 ‘전화해도 돼요?’라고 주저하지 않고 묻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

○연애 권력, 이젠 여성 손에 달렸다

대중문화 속 ‘연애 권력’이 여성에게 넘어갔다. 남성이 주도하거나 최소한 남녀 평등했던 연애의 헤게모니가 여성으로 치우치는 현상은 대중문화 곳곳에서 두드러진다.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는 광고 카피를 ‘여자들이 연애할 때 알고 싶은 남자에 대한 모든 것’이라고 정했다. 여자들이 궁금해 하는 남자들의 연애심리를, 형제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풀어낸 이 영화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케이블 방송 XTM에서 방영되는 ‘S’는 남성이 여성에게 구애하는 기존 짝짓기 프로그램과 달리 여성 두 명이 남성을 두고 경쟁을 벌여 유혹하는 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남성이 이른바 여성의 ‘사냥감’이 되는 셈. 제작을 맡은 이덕재 PD는 “마음에 드는 남성에게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요즘 트렌드를 최대한 반영했다”고 말했다.

드라마도 여성의 연애를 강조한다. 올해 최고의 흥행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필두로 SBS ‘사랑은 기적이 필요해’, MBC ‘영재의 전성시대’ ‘결혼합시다’, KBS ‘사랑도 리필이 되나요’ 등 최근 방영되는 드라마는 모두 여성을 ‘주어’로 러브스토리를 전개한다. 여성들이 연애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에 따르면 1995년 전체 가입자 중 남성은 8085명으로 전체의 72.1%, 여성은 3129명으로 27.9%에 불과했다. 그러나 10월 말 현재 남성 가입자는 1960명으로 전체의 46.6%로 줄었지만 여성은 2222명으로 전체의 53.1%로 늘었다.

○왜 ‘여성의 연애’에 열광하는가

여성 주도의 연애가 문화상품에서 두드러지게 그려지는 것은 여성의 남성 리드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20대들에게는 현실의 반영이고, 연애에 적극적이고 싶지만 현실에서 그러지 못하는 30대 여성에게는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이다.

김소영(33·여·주부) 씨는 “평소 꽃미남 스타일의 연하남을 보면 호감을 느끼지만 표현은 못 하는데 그런 감정을 영화나 드라마로 해소한다”고 말했다.

여성 주도의 연애가 영화, 드라마 등에서 앞 다투어 그려지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여성의 경제력 향상 때문으로 풀이된다. 광고회사 TBWA 이상규 차장은 “맞벌이 부부와 싱글 여성이 늘면서 문화 콘텐츠의 주 구매층인 20, 30대의 구매력이 크게 증가했다”며 “대부분 마케팅의 최우선으로 여성 소비층을 고려한다”고 말했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기획한 MK픽처스의 심재명 대표는 “영화의 주 관객은 여성”이라며 “여성 관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소재를 골라 여자 중심으로 풀어갈 때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평론가들은 최근의 여성의 연애에 대해 경제력 향상보다는 “그간 숨겨지거나 억압돼 왔던 ‘여성의 욕망’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고, 이에 대해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이는 여성 주도 연애를 다룬 콘텐츠가 남성들에게도 인기가 많다는 데서 나타난다.

문화평론가 강명석 씨는 “남성들은 여성이 주도하는 연애를 다룬 로맨틱 코미디나 시트콤 등을 보면 여성의 심리를 파악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일상 여성들의 심리를 궁금해하는 남자들이 주변에 많다”고 말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이수연 사회문화연구부장은 ”여성의 욕망 자체가 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20, 30대 여성뿐 아니라 동년배 남성, 나아가 사회 전체에서 여성의 욕구가 소비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