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 7년만에 신작 ‘돼지들에게’ 펴내

  • 입력 2005년 11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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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베스트셀러 한국 시집’으로 꼽히는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시인 최영미(44·사진) 씨가 세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를 실천문학사에서 펴냈다. ‘꿈의 페달을 밟고’ 이후 7년 만에 낸 시집이다.

이 시집 1부에는 ‘돼지와 진주’ 연작들이 나오는데 최 씨는 “거기 나오는 돼지 여우 늑대들은 우리 사회의 위선적인 지식인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전 대학교에 시 창작 강의를 나갔다가 학생들의 해맑은 얼굴 속에 든 단순함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단순한 대중에게 영합해서 부귀를 얻으려는 사이비 지식인들에 대해 제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분노랄까, 경멸감 같은 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됐지요. 그것들이 갑자기 시(詩)로 바뀌는 순간들이 찾아왔어요.”

‘박수가 터질 시간을 미리 연구하는/머릿속은 온갖 속된 욕망과 계산들로 복잡하지만/카메라 앞에선 우주의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심각해지는//냄새나는 돼지 중의 돼지를/하늘에서 내려온 선비로 모시며//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그를 찬미하고 또 찬미하리라./앞으로도 이 나라는 그를 닮은 여우들 차지라는/변치 않을 오랜 역설이……나는 슬프다.’(‘돼지의 변신’ 중에서)

축구광인 최 씨는 이 시집 3부에 축구에 관한 시 9편을 싣고 있다. ‘정의는 축구장에만 있다’라는 시에는 “최고의 선수는 반칙을 하지 않고/반칙도 게임의 일부임을 그대들은 보여주었지”라는 대목이 있다.

최 씨는 “축구왕 펠레가 평생 옐로카드를 단 한번 받았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냐”고 묻더니 “세상에는 펠레 아닌 사람이 거의 전부다. 전에는 소소하게 반칙하는 사람들을 싫어했지만, 이젠 받아들이고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에서 인생을 배운다”며 “‘공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라는 시가 맘에 든다”고 말했다. ‘공은 그가 기다리는 곳에서 오지 않았다./그가 보지 못한 뒤에서 날아온 공이 그를 쓰러뜨렸고/내가 기대하지 않던 친구의 도움이 나를 살렸다.//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공이 오고 가며 게임이 완성된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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