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창작개그’ 개그맨보다 더 웃겨요

  • 입력 2005년 11월 1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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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누리꾼이 그룹 ‘신화’의 멤버인 김동완의 사진에서 얼굴만 오려 손가락으로 잡은 후 다른 사람의 얼굴 부위에 대고 원근감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 코믹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네이버
한 누리꾼이 그룹 ‘신화’의 멤버인 김동완의 사진에서 얼굴만 오려 손가락으로 잡은 후 다른 사람의 얼굴 부위에 대고 원근감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 코믹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있다. 사진 제공 네이버
기분도 우울한데 ‘크게 한번 웃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면? 중년은 코미디 영화나 TV의 개그 프로그램을 찾겠지만 10, 20대는 인터넷의 유머 게시판을 클릭한다. 최신 유머 트렌드는 TV나 스크린이 아닌 ‘인터넷 유머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각종 인터넷 유머 게시판의 인기 아이템은 ‘연예인 놀이’와 ‘공감 놀이’. ‘연예인 놀이’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프린트해 얼굴 부위를 오린 후 이를 피사체의 얼굴 부위에 대고 원근감을 이용해 사진을 찍어 코믹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며 ‘공감 놀이’란 누구나 느끼는 생활 속 경험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재미있게 각색하는 것이다.

○일상(日常)을 개그로

‘웃긴 대학’ ‘디시인사이드’ ‘붐업’ 등 인터넷의 유머 관련 사이트에는 남성 6인조 그룹 ‘신화’의 얼굴을 이용한 ‘신화놀이’, 이른바 ‘빼빼로 데이’인 11월 11일 예쁜 여성에게서 빼빼로를 받았지만 빈 상자였다는 사진, ‘내가 속한 반은 항상 전교에서 가장 떠드는 반이었다’는 설명이 붙은 그림(선생님이 어느 반에나 똑같은 주의를 주었다는 뜻), ‘엄마 친구 아들은 모두 공부만 한다’(‘누구 집 아들은…’이라는 엄마들의 꾸중은 다 똑같다는 풍자) 등 생활 속 유머 창작물이 가득하다. 이들 유머는 △재미있는 사연을 마우스로 그린 그림 △일상의 장면을 디카로 찍어 포토 드라마 식으로 각색한 사진 △플래시영상 등의 새로운 형식에 담겨 웃음이 시각화되는 특징을 공유한다.

‘웃긴 대학’의 이정민(36) 대표는 “과거의 최불암 시리즈, 참새 시리즈처럼 남에게서 들은 얘기가 아니라 자신이 일상에서 겪은 이야기를 마치 PD처럼 개그 스토리로 구성해 올리는 사람이 많다”며 “사람들은 이제 남의 얘기를 듣고 웃기보다는 남이 자신의 이야기를 보고 웃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만인(萬人) 개그 시대

‘일상’이 유머 트렌드가 되다 보니 직업적인 개그맨들도 유머 게시판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정도. 개그맨 박준형(30) 씨는 “개그맨들보다 웃기는 이야기를 만드는 일반인이 많은 데다 젊은 세대의 웃음을 이해하기 위해 유머 게시판을 살펴본다”고 말했다.

실제로 KBS2 ‘개그 콘서트’ 중 ‘봉숭아 학당’ 코너에 복학생으로 출연하는 개그맨 유세윤(25) 씨는 유머 게시판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80년대 목 폴라’, ‘남방 앞부분만 바지 속에 넣기’ 등을 선보여 인기를 끌었다. 같은 프로그램의 ‘생활 사투리’ 코너는 ‘할아버지 오셨습니까’를 ‘할뱅교?’로 줄여 말하는 이른바 ‘사투리 압축률 유머’를 인터넷에서 건져내 만들었다.

인터넷에서 자생한 개그가 대세를 이루다 보니 웃음의 코드도 달라졌다. “영구 없다”(심형래), “잘∼돼야 할 텐데”(김형곤) 등 ‘반복’을 통해 웃음을 빚어냈던 1980년대나 맥락의 극적 반전을 통해 웃음을 이끌어낸 1990년대 몰래 카메라 식의 웃음과 달라진 것.

최근의 개그에서는 “공기밥 추가해도 돈 받는 식당 주인들 벌하러 갑니다”라는 출산드라의 어록처럼 일상에서 생각은 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부분을 ‘콕’ 집어내는 기법이 중시된다.

문화평론가 김헌식(33) 씨는 “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유행하는 것처럼 웃음도 공감이 빚어내는 감동인데 연출된 유머나 뻔히 보이는 이야기는 이제 감동을 유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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