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우울한 열정’…7인의 예술가를 해부하다

  • 입력 2005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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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열정/수전 손택 지음·홍한별 옮김/262쪽·1만6000원·시울

이 책을 읽어 보면 왜 그가 ‘뉴욕 지성계의 여왕’으로 불렸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지적 편력은 철학 역사 문학 미술 사진 조각 영화, 심지어 포르노그래피까지 전방위적이다. 그의 레이더에 포착된 예술계 인사들은 하나같이 난해하거나 논쟁적이다. 그러나 그 까다로운 인물들을 요리해 내는 솜씨는 새침하면서도 관능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눈물겹다.

수전 손택. 지난해 유명을 달리 한 그가 1980년 발표한 세 번째 에세이집은 그가 사랑하거나 혹은 증오한 7명의 작가에 대한 평전이다. 소설가 폴 굿맨과 엘리아스 카네티, 문학평론가 롤랑 바르트와 발터 베냐민, 극작가 앙토냉 아르토,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크. 20년 전에 그녀가 선택한 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전위적 존재다.

‘부조리하게 자라다’를 쓴 아나키스트 작가 굿맨이 1972년 죽었을 때 손택이 쓴 글은 가슴 시리게 아름답다.

“나는 폴 굿맨이 미국에 살면서 건강하게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 생각해도 강렬한 기쁨을 느끼면서도, 나 자신이 폴 굿맨과 같은 방에 있으면서도 눈곱만큼도 그와 교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될 때마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른다. 폴 굿맨과 나는 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나는 그를 싫어했다. 그 이유는, 그의 생전에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곤 했듯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그를 싫어한다는 것이 얼마나 딱하고 기계적인 반응인지 나는 늘 느끼고 있었다. 폴 굿맨이 죽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그걸 깨닫게 된 것이 아니라….”

이 글은 문학평론가 김현이 죽었을 때 시인 황지우가 화장실 변기에 앉아 욕지기를 해대며 울면서 쓴 글만큼 감동적이다.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토성의 영향 아래(Under the Sign of Saturn)’는 훗날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시원과 같은 존재가 된 베냐민에 대한 평전으로는 가장 아름답다. 손택은 난삽하기로 악명 높은 베냐민의 저서를 속속들이 독파해 “나는 토성의 영향 아래 태어났다. 가장 느리게 공전하는 별, 우회와 지연의 행성”이라는 베냐민의 글을 모티프 삼아 “시간적 움직임을 공간적 이미지로 파악하고 분석하는” 베냐민의 실체를 명민하게 포착한다.

실험영화 ‘히틀러, 독일영화’를 만든 영화감독 지버베르크에 대한 분석을 읽노라면 손택과 같은 관객을 만난 지버베르크가 부러울 정도다. 손택은 ‘해석에 반대한다’ 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지금 그의 해석을 아쉬워하는 예술가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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